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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7일
연중 제24주일

17일 (녹) 연중 제24주일
9월 20일에 대축일 미사를 드릴 곳에서는 주일 미사를 드린다.
주일 미사, 대영광송, 신경, 연중 주일 감사송
① 집회 27,30―28,7
② 로마 14,7-9
㉥ 마태 18,21-35.
장례 미사 이외의 죽은 이를 위한 미사 금지
주일 시간 전례

 

 

17 (녹) 연중 제24주일 성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주교 학자 기념 없음
<9월 20일에 대축일 미사를 드릴 곳에서는 주일 미사를 드린다.>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24주일입니다. 사랑과 정의의 주 하느님께서는 형제들을 용서하는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잘못한 이들을 모두 용서할 수 있도록, 우리 안에 새로운 마음을 주시기를 청합시다.

 

입당송 집회 36,21-22 참조
주님,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소서. 당신 예언자들이 옳다는 것을 드러내시고, 당신 종과 당신 백성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대영광송>

 

본기도
하느님,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니, 저희를 굽어보시어, 저희가 하느님의 자비를 깨닫고,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집회서는 분노와 복수가 아니라 용서하고 자비를 품으며, 계명을 기억하고 이웃에게 분노하지 말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는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임금에 비길 수 있다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네 이웃의 불의를 용서하여라. 그러면 네가 간청할 때 네 죄도 없어지리라.>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 27,30─28,7
30 분노와 진노 역시 혐오스러운 것인데도 죄지은 사람은 이것들을 지니고 있다.
28,1 복수하는 자는 주님의 복수를 만나게 되리라. 그분께서는 그의 죄악을 엄격히 헤아리시리라.
2 네 이웃의 불의를 용서하여라. 그러면 네가 간청할 때 네 죄도 없어지리라.
3 인간이 인간에게 화를 품고서 주님께 치유를 구할 수 있겠느냐? 4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자비를 품지 않으면서 자기 죄의 용서를 청할 수 있겠느냐? 5 죽을 몸으로 태어난 인간이 분노를 품고 있으면 누가 그의 죄를 사해 줄 수 있겠느냐?
6 종말을 생각하고 적개심을 버려라. 파멸과 죽음을 생각하고 계명에 충실하여라.
7 계명을 기억하고 이웃에게 분노하지 마라. 지극히 높으신 분의 계약을 기억하고 잘못을 눈감아 주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03(102),1-2.3-4.9-10.11-12(◎ 8)
◎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는 더디시나 자애는 넘치시네.
○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
○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아픔을 없애시는 분. 네 목숨을 구렁에서 구해 내시고, 자애와 자비의 관을 씌우시는 분. ◎
○ 끝까지 캐묻지 않으시고, 끝끝내 화를 품지 않으시네. 우리를 죄대로 다루지 않으시고, 우리의 잘못대로 갚지 않으시네. ◎
○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은 것처럼, 당신을 경외하는 이에게 자애가 넘치시네.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가 먼 것처럼, 우리의 허물들을 멀리 치우시네. ◎

 

제2독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4,7-9
형제 여러분, 7 우리 가운데에는 자신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자신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8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9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바로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요한 13,34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 알렐루야.

 

복음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21-35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신경>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 형제 여러분,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어 빚을 다 탕감해 주시는 자비하신 하느님 아버지께 간절히 청합시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순교자들의 주님, 주님의 교회에 순교 정신을 북돋아 주시어, 삶과 죽음이 모두 주님을 위하여, 주님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굳은 믿음으로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게 하소서.
◎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2. 우리나라의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인자하신 주님, 갈등과 분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나라를 굽어보시어, 자유와 평등과 연대의 정신을 실천하는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어 가도록 도와주소서. ◎
3. 실의에 빠진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위로자이신 주님, 정신적 물질적 어려움으로 삶의 방향을 잃은 이들을 보살펴 주시어, 그들이 절망의 나락에 떨어지지 않고 새 힘을 얻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
4. 가정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비하신 주님, 저희 가정 공동체를 굽어살피시어, 가족들이 언제나 주님의 계명을 기억하고 따르며, 이웃의 잘못을 너그러이 용서하는 자비로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
✛ 자비를 베푸시는 주님, 주님의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저희의 기도를 너그러이 들어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예물 기도
주님,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이 제물을 너그러이 받으시어,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저희가 드리는 이 제사가, 모든 이의 구원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연중 주일 감사송: 168면 참조>

 

영성체송 시편 36(35),8
하느님, 당신 자애가 얼마나 존귀하옵니까! 모든 사람들이 당신 날개 그늘에 피신하나이다.

 

영성체 후 묵상
▦ “죽을 몸으로 태어난 인간이 분노를 품고 있으면 누가 그의 죄를 사해 줄 수 있겠느냐?” 이웃의 불의를 용서하면 주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고 집회서의 저자는 말합니다. 분노를 품고서 어찌 주님께 자비와 용서를 청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합시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천상 은총으로 저희 몸과 마음을 이끄시어, 저희가 제 생각대로 살지 않고, 그 은총의 힘으로 살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런 확신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나의 삶은 언제나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우리 시대의 소신과는 사뭇 대비되는 말씀입니다. 만일 내 삶이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고, 그래서 죽음조차도 애초부터 내가 겪게 될 인간 존재의 상실이 아니라, 하느님의 생명과 결합되는 구원의 길임을 확신한다면, 과연 이 세상의 삶은 어떤 질적인 변화를 겪게 될까요?
오늘 용서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용서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역임을 일깨워 줍니다. 얼마만큼 용서하면 성숙한 인간이 되는지 묻는 베드로의 질문 속에는, 누군가를 용서함으로써 그보다 더 나은 인간임을 짐짓 드러내려는 우월감이 숨어 있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만 탈렌트라는 상상하기 힘든 금액을 탕감해 준 임금의 자비를 입은 사람이, 겨우 백 데나리온을 빚진 사람 위에 군림하려는 교만으로는 용서의 진정한 의미를 체험할 수 없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참된 용서는, 하느님 앞에 선 나약한 내 존재 전체가 이미 용서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는, 단순하면서도 놀라운 신비를 깨달았을 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내 삶 전체가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이 세상에서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 삶과 죽음이 모두 주님의 것이라면, 내가 하느님께 진 빚을 어떻게 세상의 기준으로 갚을 수 있을까요? 어쩌면 용서는 하느님께서 하시고, 나는 그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내 이웃에게 보여 주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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