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 19일 목요일
[녹]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또는
[백] 성 로무알도 아빠스
입당송 시편 27(26),7.9 참조
본기도
제1독서
<나는 하느님의 복음을 대가 없이 여러분에게 전해 주었습니다.>11,1-11
화답송시편 111(110),1ㄴㄷㄹ-2.3-4.7-8(◎ 7ㄱ 참조)
복음 환호송로마 8,15 참조
복음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6,7-15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27(26),4
요한 17,11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기도는 하느님께 나의 필요를 알려 드리고 그에 응답해 주시도록 설득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사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존재가 그분 눈앞에 환히 드러나 있습니다. 이는 시편의 기도에서 잘 드러납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살펴보시어 아십니다. 제가 앉거나 서거나 당신께서는 아시고, 제 생각을 멀리서도 알아채십니다. 정녕 말이 제 혀에 오르기도 전에, 주님, 이미 당신께서는 모두 아십니다”(139[138],1-2.4).
그런데 하느님께서 이미 다 아신다고 해서 우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예컨대 엄마가 필요한 것을 알아서 챙겨 주기 때문에 아이가 아무 표현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신뢰하고 또 가깝게 여기는 이들에게 하는 일상적인 말들을 하느님께도 해 봅시다. “와, 참 좋아요!” “감사해요!” “멋지네요!” “사랑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할까요?” 기도가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라면 이렇게 일상적으로 진솔하게 나누는 대화도 기도입니다.
이 기도의 출발점은 ‘우리 아버지’(마태 6,9 참조)입니다. 아버지와 대화하면서 친밀한 관계를 누리는 사람은 형제들의 필요에도 응답하고자 합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체험한다면 그분의 다른 자녀인 형제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주님의 기도 전반부는 아버지께서 어떻게 해 주시기를 청하기보다는 내가 그분의 도구가 되겠다는 다짐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기]”(6,9)는 그리스도인의 본질적이고 일차적인 사명으로, 자기 존재 안에 아버지의 얼굴을 드러내면서 그 얼굴을 믿을 만한 방식으로 그려 내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