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박해(1791)
‘하느님의 종’ 순교자 3위
지난 2009년 6월 3일 교황청 시성성에 시복 조사 문서가 접수된
‘하느님의 종들’의 약전을 금년 한 해 동안 연재합니다.
1. 시복 추진 중인 순교자 124위의 대표 순교자는 윤지충 바오로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순교의 칼날을 맞고 순교하셨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종 124위 가운데 신해박해로 순교한 분은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원시장 베드로 3위이다.
2. 윤지충 바오로는 1759년 전라도 진산 장구동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학문에 정진하여 1783년 봄 진사 시험에 합격하였다. 1787년 인척인 이승훈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았다. 1790년 북경의 구베아 주교가 조선 교회에 제사 금지령을 내리자, 그는 신주(죽은 사람의 위패)를 불살랐다. 이듬해 여름 그의 어머니가 사망하자, 어머니의 유언대로 유교식 제사 대신 천주교 예절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유교식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은 유일하신 하느님의 신성을 고백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천주를 큰 부모로 삼았으니, 천주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는 결코 그분을 흠숭하는 뜻이 될 수 없습니다.” 1791년 12월 8일, 처형장인 전주 남문 밖에 끌려갈 때, 잔치에 나가는 사람처럼 즐거운 표정을 하였으며, ‘예수, 마리아’를 부르면서 칼날을 받았다. 9일 뒤 순교자의 시신을 거둘 때, 신자들은 그분을 공경하여 자신들의 손수건에 순교자의 피를 묻혀 간직하였다가, 중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만지게 하여 기적적 치유를 경험하였다고 한다.
3. 권상연 야고보는 윤지충 바오로의 외종사촌이다. 곧, 윤지충의 어머니가 권 야고보의 고모이다. 그는 1751년 진산의 유명한 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윤 바오로를 통해 신앙을 받아들이고 기존의 학문을 포기하였다. 윤 바오로와 함께 천주 신앙을 고백하며 1791년 12월 8일 형장에서 바오로의 뒤를 따라 순교의 칼날을 받았다. 신자들은 윤 바오로와 권 야고보를 공경하여, 그들의 피를 손수건에 적셔 간직하였고, 기적적 치유를 경험하게 되었다.
4. 원시장 베드로는 1732년 충청도 홍주 응정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천주교 교리를 공부하며 ‘천주교 신앙이 수천 년 동안 목숨을 보전해 주는 약’임을 깨달았다. 1791년 신해박해로 체포되어 여러 차례 형벌을 받고 신앙을 증언하였다. 아무리 매를 쳐도 죽지 않자, 홍주 관장은 겨울의 혹한 중에 그를 밖에 내다 놓아 얼어 죽게 만들었다. 원시장 베드로는 마지막으로 감사 기도를 드리며 자신의 목숨을 하느님께 바쳤다. 때는 1793년 1월 28일이었다.
5. 되새기기 -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가 모든 것 위에 높으신 하느님의 신성을 고백한 것처럼, 우리도 모든 일과 활동에 앞서 하느님을 흠숭하고 그분께 경배드리자. 원시장 베드로가 모든 고통 중에 감사드린 것처럼, 우리도 일상의 고통과 십자가에 감사드리자. 하느님께서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불러 주신 것을 감사드리며, 103위 성인 호칭 기도를 바치자.
<자료 출처: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편찬,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증거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