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7월 - “착한 목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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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 목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1.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1821년 3월, 충남 청양의 다락골에서 부친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과 ‘하느님의 종’ 이성례 마리아의 장남으로 태어나, 다락골 인근의 새터 교우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후에 부친을 따라, 경기도 부평을 거쳐 안양의 수리산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1835년 말, 조선에 입국한 모방 신부의 눈에 띄어 15세의 나이로 한국의 첫 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2. 최 토마스는 동료 신학생인 최방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와 김대건 안드레아와 함께 1836년 12월 마카오 유학길에 올라, 1837년 6월에 파리 외방 전교회 극동 대표부에 도착하여, 그곳에 설립된 임시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였고, 마카오에 민란이 일어나자, 마닐라로 피난 가서 수업을 받기도 하였다. 최 토마스는 1842년 마카오를 떠나, 입국로를 탐색하고자 남경을 거쳐 요동으로 갔다. 그는 1843년 프랑스 파리의 무염 성모 성심회에 가입하였고, 이 무렵 조국에 일어난 박해와 부모님과 다른 신자들의 순교 소식을 들었다. 그는 자신의 편지에 이렇게 쓰고 있다. “저는 우리 부모님과 형제들을 따라서 공을 세우지 못하였으니, 저의 신세가 참으로 딱합니다. 그리스도 용사들의 그처럼 장열한 전쟁에 저는 참여하지 못하였으니 말입니다.” 1844년 12월 최 토마스는 신학 수업을 마치고 김 안드레아와 함께 부제품을 받았다. 이후 1848년까지 입국을 준비하고 있던 최 토마스 부제는 1849년 4월 서가회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고, 요동 지방으로 가서 본격적인 귀국을 시도하였다. 그해 12월 최 토마스 신부는 조선의 밀사 신자들을 만나 귀국하게 되었다.

     

    3. 최 토마스 신부가 귀국하였을 때,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후에, 주교가 됨)는 병이 나, 사목 방문을 할 수 없는 처지에 있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각처에 숨어 있는 신자들을 순방하기 시작하였다. 최 토마스 신부는 1850년 초부터 6개월 동안 5천여 리를 걸어 3,815명의 신자를 방문하였다. 이러한 형태의 사목 활동은 11년 6개월여 동안 꾸준히 계속되었으며, 그 외에도 최 신부는 휴식 기간을 이용, 한문 교리서와 주요 기도서를 한글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한글로 된 천주 가사를 작성하거나 기존에 있던 가사들을 정리하여 신자들에게 보급하였다. 그 이유는 성가 형태로 된 천주 가사들이 신부의 강론을 대신하기도 하고, 신자들의 신앙심을 돈독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최 신부는 선교사들의 조선 입국을 도왔으며, 방인 사제 양성을 위해 다블뤼 신부가 세운 충북 진천의 배티 신학교에서 세 명의 소년을 가르치다가, 말레이 반도에 있는 페낭 신학교로 보냈다.

     

    4. 최양업 신부는 사목 순방 도중, 많은 어려움과 박해에 직면하여 목숨이 위태로웠다. 한 번은 서양인으로 오인을 받아 마을에서 쫓겨나기도 했고, 포졸들의 습격으로 체포되어 죽을 위험에 놓이기도 하였다. 특히 1859년 겨울에는 순방 도중에 발각되어 포졸과 외교인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반쯤 나체가 된 채 눈길을 헤매기도 하였다. 1860년 경상도 지역에서 경신박해를 만난 최 신부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며, 이렇게 스승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편지를 썼다. “이것이 저의 마지막 하직 인사가 될 듯합니다. 저는 어디를 가든지, 계속 추적하는 포위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희망이 없습니다.” 드디어 육신의 힘이 고갈된 최 신부는 과로에다 장티푸스까지 겹쳐, 1861년 6월 문경읍(진천 배티 교우촌)에서 40세의 나이로 선종했고, 그해 11월 초, 그의 유해는 제천 배론 신학교에 모셔졌다.

     

    5. 되새기기 - 베르뇌 주교 성인은 최양업 신부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하였다. “최 토마스 신부는 신심, 영혼의 구원을 위한 불과 같은 열심, 그리고 훌륭한 분별력으로 우리에게 그렇게 귀중한 존재가 되었다.” 최양업 신부를 닮은 착한 목자와 선교사들이 많아지도록 기도하자.

     

    <출처: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편찬,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 증거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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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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