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5월 27일 수요일
[백] 부활 제7주간 수요일 또는
[백] 캔터베리의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입당송 시편 47(46),2
본기도
말씀의 초대
바오로는 에페소 교회 원로들에게 모든 양 떼를 잘 보살피라고 당부하고 떠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제자들을 하나가 되게 해 주시고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기도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하느님께 여러분을 맡깁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굳건히 세우시고 상속 재산을 차지하도록 그것을 나누어 주실 수 있습니다.>20,28-38
화답송시편 68(67),29-30.33-35ㄱ.35ㄴㄷ과 36ㄷ(◎ 33ㄱㄴ)
복음 환호송요한 17,17 참조
복음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17,11ㄷ-19
예물 기도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영성체송 요한 15,26-27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애잔한 갈라짐을 묵상합니다. 굳이 사회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 가족과 이웃 안의 갈라짐도 가슴 한편에 쓰라린 상처로 남아 있음을 고백합니다. 상처를 헤집는 또 다른 갈라짐으로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힘겹게 살아갈 테지요. 언제 상처가 아물까 늘 기다리고 매달리고 기도하지만 아물기 전에 짓물러 터져 버리는 상처로 오늘 또 울먹거리기도 합니다.
예수님과 하나 되는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고되고 쓰린 일상을 십자가에 빗대어 생각해 봅니다.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에 속하지 않는 듯 살아가는 것이 십자가의 삶입니다. 서로 힘들어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삶의 고통 가운데 살아가면서 그 고통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견디는 것이 십자가의 삶입니다.
십자가의 이러한 가르침은 흔히 스스로 깨달았다고 가르치는 대중 설교가의 무책임한 현실 도피적 가르침과는 다릅니다. 지금의 고통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다시 살펴보고 희망을 가지라는 터무니없는 가르침도 아닙니다. 현실의 고통과 처절히 ‘하나’가 되는 것이 십자가이고, 십자가의 고통을 기꺼이 짊어지는 것이 십자가의 가르침입니다. 고통을 긍정으로 바꾸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고통 자체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역설적이게도 힘든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고 예수님을 통하여 아버지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일입니다.
사는 것이 고통스러우신가요? 아니면 힘겨우신가요? 고통스럽고 힘들면 그렇다고 크게 외치고 도와 달라 손을 내밀어 보세요. 그 외침을 듣고 그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이가 바로 옆에서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저 혼자 고통을 이겨 내겠다고, 마음의 생채기를 치료하겠다고 허둥대지 말고, 조용히 용기를 내어 손을 내미세요. 부족하지만 함께 맞잡은 손에서 하느님과 예수님, 그리고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