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6월 04일 목요일
[녹] 연중 제9주간 목요일
입당송 시편 25(24),16.18 참조
본기도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그분과 함께 살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첫째가는 계명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둘째는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그분과 함께 살 것입니다.>2,8-15
화답송시편 25(24),4-5ㄱㄴ.8-9.10과 14(◎ 4ㄱ)
복음 환호송2티모 1,10 참조
복음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12,28ㄱㄷ-34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17(16),6
마르 11,23.24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맹자』에 알묘조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싹을 뽑아 올려, 자라는 것을 돕는다.’라는 뜻인데 이와 관련하여 송나라의 어느 어리석은 농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심은 곡식의 싹이 더디게 자라자 이것이 걱정되어 싹을 잡아당겼습니다. 그러고는 집에 돌아와서 아들에게 자랑을 합니다. “오늘 내가 큰일을 했지. 싹이 잘 자라도록 도와주었단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이 밭에 나가 보니 뿌리 뽑힌 싹들이 햇볕에 말라 죽어 있었습니다. 나무와 꽃을 하루아침에 다 자라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그 농부는 몰랐던 것입니다. 생명이 담겨 있지 않은 공산품이야 정해진 시간 안에 완성품을 만들 수 있지만, 생명이 담겨 있는 것은 작은 데서부터 시작하여 세월과 함께 자라도록 인내해야 하는 것이 이치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은 하느님의 생명이기에 누군가를 향한 사랑은 기계로 뚝딱 만들어지는 완제품처럼 금세 완성될 수 없습니다. 배 속의 아이가 자라는 동안 산모가 고통을 겪듯이, 논밭에 뿌린 씨가 자라나 열매를 맺기까지 농부의 수고가 필요하듯이, 하느님을 향한 사랑도, 이웃을 향한 사랑도 숭고하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성장하기까지는 인내와 좌절, 땀과 눈물이 녹아 들어간 세월이 반드시 필요한 법입니다. ‘나’의 사랑이 작고 미약하다고 쉽게 좌절하지 맙시다. 부족한 사랑을 일부러 키운다고 무리하여 알묘조장의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맙시다. 그저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열매 맺기를 희망하며 세월과 함께 우리의 사랑을 잘 가꾸어 나갑시다.
(한재호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