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7월 11일 토요일

[백]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서방 수도 생활의 아버지’라 불리는 베네딕토 성인은 480년 무렵 이탈리아 중부 지방의 누르시아에서 태어났다. 로마에서 학업을 마친 그는 수도 생활에 대한 관심으로 동굴에서 3년 동안 고행과 기도의 은수 생활을 하였다. 그의 성덕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모여들자 베네딕토는 마침내 수도원을 세웠다. 그리고 재물의 사유화를 금지하고 공동생활과 정주의 의무를 명백히 규정한 수도 규칙서를 만들었다. 이 규칙서는 수도 생활의 표준 규범서로 삼을 정도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베네딕토 아빠스는 547년 무렵 몬테카시노에서 선종하였다고 전해진다. 1964년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그를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입당송 

베네딕토는 그 이름대로 복을 받아 거룩하게 살았네. 그는 가족과 유산을 버리고, 오로지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고 거룩한 수도 생활을 추구하였네.

본기도 

하느님,
복된 베네딕토 아빠스를 뛰어난 스승으로 세우시어
하느님을 섬기라 가르치셨으니
저희도 오로지 하느님만을 사랑하며
열린 마음으로 자유로이 하느님의 계명을 따라 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내가 누구를 보낼까?”라는 주님의 소리를 듣고,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하고 아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인데,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6,1-8
1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
나는 높이 솟아오른 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그분의 옷자락이 성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2 그분 위로는 사랍들이 있는데, 저마다 날개를 여섯씩 가지고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아다녔다.
3 그리고 그들은 서로 주고받으며 외쳤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분의 영광이 가득하다.”
4 그 외치는 소리에 문지방 바닥이 뒤흔들리고 성전은 연기로 가득 찼다.
5 나는 말하였다.
“큰일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살면서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
6 그러자 사랍들 가운데 하나가 제단에서 타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손에 들고 나에게 날아와, 7 그것을 내 입에 대고 말하였다.
“자,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죄는 없어지고 너의 죄악은 사라졌다.”
8 그때에 나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소리를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리오?”
내가 아뢰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시편 93(92),1ㄱㄴ.1ㄷ-2.5(◎ 1ㄱ)

◎ 주님은 임금님, 위엄을 입으셨네.
○ 주님은 임금님, 위엄을 입으셨네. 주님이 차려입고 권능의 띠를 두르셨네. ◎
○ 누리는 정녕 굳게 세워져 흔들리지 않네. 예로부터 주님 어좌는 굳게 세워지고, 영원으로부터 주님은 계시네. ◎
○ 당신 법은 실로 참되며, 당신 집에는 거룩함이 서리나이다. 주님, 길이길이 그러하리이다. ◎

복음 환호송1베드 4,14 참조

◎ 알렐루야.
○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하면 너희는 행복하리니 하느님의 성령이 너희 위에 머물러 계시리라.
◎ 알렐루야.

복음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4-3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25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
26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28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30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32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잠언 2,1-9)와 복음(마태 19,27-29)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 기도 

주님,
복된 베네딕토를 기리며 드리는 이 거룩한 제사를 인자로이 굽어보시어
저희가 그를 본받아 주님만을 찾고 섬기며
주님께서 주시는 일치와 평화를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루카 12,42 참조

주님은 당신 가족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을 세우셨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체성사로 영원한 생명의 보증을 받고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복된 베네딕토의 가르침에 따라 주님을 충실히 섬기며
진심으로 형제들을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성경에서 말하는 두려움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많은 경우에 경외로 표현합니다. 하느님을 경외함은 “영광과 자랑”이고 “주님에게서 오는 선물”이며 “지혜의 뿌리”로 표현됩니다(집회 1장 참조). 반면에 다른 두려움은 세상에 대한 것입니다. 근심은 걱정을 낳고 걱정이 심해지면 두려움으로 바뀝니다. 세상에서 오는 두려움은 우리 자신을 속박하고 성장하지 못하게 합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두려움이라는 같은 말이지만 그 결과는 사뭇 다릅니다. 같은 두려움이지만 다른 두려움입니다. 하나는 우리를 위축시키고 겁먹게 하는 두려움이지만, 다른 하나는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두려움입니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은 믿음의 시작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두려움이 아닙니다. 다른 모든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약하기에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그 약함은 하느님을 찾고 그분께 의탁하게 합니다. 약한 것이 문제라기보다 그것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향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그렇기에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은 그분의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 사랑을 실천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