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6월 27일 일요일
[녹] 연중 제13주일 (교황 주일)
한국 교회는 해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6월 29일)이나 이날과 가까운 주일을 교황 주일로 지낸다. 이날 교회는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인 교황이 전 세계 교회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주님의 도움을 청한다. 교황 주일에는 교황의 사목 활동을 돕고자 특별 헌금을 한다.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13주일이며 교황 주일입니다. 생명을 창조하시고 우리가 그 생명을 온전히 누리기를 바라시는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이 미사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 곁으로 부르십니다. 우리의 아픔을 어루만지시는 하느님의 초대에 감사드리며, 또한 성 베드로 사도 축일을 앞두고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님을 위해서도 기도합시다.
입당송 시편 47(46),2
본기도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말씀의 초대
지혜서의 저자는,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으나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다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그들이 누리는 풍요로 가난한 이들의 궁핍을 채워 주라고 권고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옷에 손을 댄 하혈하는 여자의 병을 고쳐 주시고, 회당장 야이로가 간곡히 청하자 그의 죽은 딸을 살려 내신다(복음).
제1독서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다.>1,13-15; 2,23-24
화답송시편 30(29),2와 4.5-6.11-12ㄱ과 13ㄴ(◎ 2ㄱㄴ 참조)
제2독서
<여러분이 누리는 풍요가 가난한 형제들의 궁핍을 채워 줄 것입니다.>8,7.9.13-15
복음 환호송2티모 1,10 참조
복음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5,21-43
5,21-24.35ㄴ-43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목자이신 주님, 주님의 종 프란치스코 교황을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주님 백성의 신앙을 굳건히 하고, 일치의 토대가 되며, 모든 이를 하느님 나라로 이끄는 데 어려움이 없게 하소서.
2. 정치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공정하신 주님, 정치인들을 주님의 정의로 이끌어 주시어, 국민을 위하여 입법, 사법, 행정 업무를 실행하는 데 각자의 생각을 진실하게 나누며 서로 견제하고 보완하여, 모든 이가 행복한 나라를 만들게 하소서.
3. 한반도의 종전 선언과 평화 체제 실현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의 원천이신 주님, 지구촌 최후의 분단국인 이 땅에 하루빨리 종전이 선언되도록 도와주시어, 화해와 평화의 새로운 한반도를 만들어 나가게 하소서.
4. 지역 사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비하신 주님, 지역 사회의 어려운 이들을 보살펴 주시어, 그들의 건강을 지켜 주시고, 저희가 복음을 실천하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나눌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예물 기도
감사송
<연중 주일 감사송 2 : 구원의 신비>영성체송 시편 103(102),1
요한 17,20-21 참조
영성체 후 묵상
▦ 어린 딸을 살리려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리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우리가 그 모습과 그분의 사랑에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청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열두 해 동안 하혈하는 여자, 열두 살 어린 소녀. 열둘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두 사람입니다. 한 명은 난치병을 앓았고 다른 한 명은 죽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인간의 힘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를 마주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둘에게는 예수님을 만나서 구원을 체험하였다는 교집합이 생깁니다. 물론 한 명은 예수님을 능동적으로 찾아가서 예수님께 손을 댔고, 다른 한 명은 수동적으로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께 손이 잡혔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닮은 듯하면서도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방법이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우리 스스로 예수님께 다가갈 수도 있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손이 예수님의 옷을 만지기도 하고 예수님께 붙잡히기도 합니다. 숱한 고생을 하고 많은 의사에게 가진 것을 다 쏟아부으며 열두 해를 보낸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예수님에 대한 소문만 듣고 그분을 믿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아픈 딸을 고쳐 주실 거라는 믿음으로 그분을 집으로 모시고자 하였지만, 집으로 가는 동안에 딸이 죽었다는 비보를 듣고 예수님을 더 수고스럽게 할 필요가 없다던 회당장은 어떻게 예수님을 쉽게 믿을 수 있었을까요? 그들이 마주한 상황은 비록 다른 모습이었지만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처지라는 같은 상황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만났습니다.
그러한 이들과 예수님의 만남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전해 줍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그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구원으로 이어집니다. 믿음은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가 아닙니다. 적당한 인간적 사고 안에서 만들어진 타당성의 결론이 아닙니다. 믿음은 때로는 무모하게 예수님께 다가가는 것이기도 하고, 그분께 손을 내밀기도 하면서 그분께서 건네시는 손을 기다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