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31일 목요일
[녹]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입당송 시편 105(104),3-4
본기도
제1독서
<모든 채비를 마치고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6,10-20
화답송시편 144(143),1.2.9-10(◎ 1ㄱ)
복음 환호송루카 19,38; 2,14 참조
복음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13,31-35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20(19),6 참조
에페 5,2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루카 13,33).
계속 가면 죽으리라는 것을 알면서 계속 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루카 복음서에서 예루살렘의 의미는 뚜렷하고,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은 이미 죽음과 부활의 시작입니다. 오늘 복음의 장면도 그러한 맥락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쫓아내시고 병을 고치시며, 복음을 선포하시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음을 아십니다. 헤로데가 교활하지만 막상 힘은 없어 여우와 같다고 하시면서도, 예언자가 예루살렘에서 죽는 것은 여우 같은 헤로데 한 사람의 탓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예언자의 운명임을 받아들이십니다.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는다는 것은 박해와 거부를 피하여 도망가는 것이고, 제1독서에서도 나온 표현을 빌린다면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에페 6,19) 선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도는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할 수 있기를 갈망합니다(6,19-20 참조). 이 ‘담대함’은 드러내 놓고 분명하게 말하는 것, 비유를 쓰거나 모호하게 돌려 말하지 않고 숨김없이 밝히는 것,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것을 뜻하며,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와 요한(4,13.29.31 참조), 바오로(9,27.28 참조), 바오로와 바르나바(13,46; 14,3 참조) 등에게 적용됩니다. 특히 사도행전의 마지막 구절에서는 바오로가 로마에 잡혀가서도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쳤다.”(28,31)라고 말합니다.
죽음도 막지 못하는 담대함, 반대를 받는 것은 말씀을 선포하는 이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기에 예수님께서도, 사도들도 망설임 없이 죽음을 향하여 걸어갔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선포하고 복음대로 살아야 할 때, 우리에게도 이러한 담대함을 주시기를 청하여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