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5월 02일 토요일
[백]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295년 무렵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아타나시오 성인은 알렉산데르 대주교를 수행하여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하였다. 328년 알렉산데르 대주교의 후계자가 된 뒤, 아리우스파에 맞서 싸우다가 여러 차례 유배를 당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정통 신앙을 해설하고 옹호하는 책을 많이 남겼으며, 수도 생활의 창시자인 안토니오 성인의 전기를 써서 서방 교회에 수도 생활을 알리기도 하였다.
입당송 집회 15,5 참조
본기도
말씀의 초대
베드로가 치유의 기적을 베푼 것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된다(제1독서). 시몬 베드로가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신 주님을 떠날 수 없다고 고백한다(복음).
제1독서
<교회는 굳건히 세워지고,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9,31-42
화답송시편 116(114─115),12-13.14-15.16-17(◎ 12)
복음 환호송요한 6,63.68 참조
복음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6,60ㄴ-69
예물 기도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영성체송 1코린 3,11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둘로 나뉩니다. 한쪽은 투덜거리며 예수님을 떠나갔고 다른 한쪽은 예수님께 믿음을 두고 그분과 함께 머뭅니다. 제자들이 갈라지는 결정적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 바로 당신이시라고, 그 빵을 어서 먹으라고 재촉하신 말씀입니다.
다른 이의 말을 잘 듣는 것은 때로는 힘들지만 때로는 위로가 될 때가 많습니다. 대개 힘든 경우는 상대의 말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닫혀 있기 때문이고, 위로가 될 때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애절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결국 서로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지니는 일입니다.
빵이 먹고 싶은 사람들을 떠올려 봅니다. 배고파야 빵을 먹고, 배고픈 삶을 살아야 빵에 대한 간절함을 지니게 됩니다. 예수님을 떠나간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이 위로보다는 불편함으로 다가온 듯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위로는 자신들의 배고픔을 채워 주지 못한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우리는 무엇에 배고파하는지 되돌아보았으면 합니다. 흔히 돈과 명예, 권력에 비판적인 것이 신앙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돈, 명예, 권력에 배고파하는 현실을 살아갑니다. 돈을 배고파하되 어떻게 쓸 것인가, 명예를 소중히 여기되 그 명예를 어떻게 도모할 것인가, 그리고 권력을 지향하되 그 권력을 더욱 올바로 힘 있게 사용하려면 어떤 삶을 추구할 것인가 되물어야 합니다. 신앙적 배고픔은 돈과 명예, 권력을 내려놓는 데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돈과 명예, 권력을 하느님 안에서, 이웃들과의 나눔 안에서 제대로 사용하면서 체험합니다.
나를 위한 배고픔을 ‘우리’를 위한 배고픔으로, 하나의 빵이라도 함께 먹는 만찬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들이 예수님 곁을 지키는 진정한 신앙인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