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5월 03일 일요일
[백] 부활 제4주일 (성소 주일, 생명 주일)
해마다 부활 제4주일은 ‘성소 주일’이다. ‘하느님의 부르심’인 성소(聖召)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특별히 사제, 수도자, 선교사 성소의 증진을 위한 날이다. 성소 주일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진행되던 1964년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38) 하신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정하였다. 이날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성소를 계발하고 육성하는 일에 꾸준한 기도와 필요한 활동으로 협력해야 할 의무를 일깨우는 기회가 되고 있다.
해마다 5월의 첫 주일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죽음의 문화’의 위험성을 깨치고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참된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생명 주일’이다.
한국 교회는 1995년부터 5월 마지막 주일을 ‘생명의 날’로 지내 오다가, 주교회의 2011년 춘계 정기 총회에서 이를 ‘생명 주일’로 바꾸며 5월의 첫 주일로 옮겼다. 교회가 이 땅에 더욱 적극적으로 ‘생명의 문화’를 이루어 나가자는 데 생명 주일을 지내는 뜻이 있다.
오늘 전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목자의 비유를 드시며 당신을 ‘양들의 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오늘 ‘성소 주일’을 지내며 주님의 뜻을 받들어 성직과 수도 생활을 지망하는 이들이 주님의 부르심을 늘 새로이 하도록 기도합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이 미사에 참여하며 주님께서 한국 교회에 풍성한 성소의 은총을 허락하시기를 한마음으로 청해야 하겠습니다.
입당송 시편 33(32),5-6 참조
본기도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말씀의 초대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삼천 명가량이 세례를 받게 이끌었다(제1독서). 선을 행하는데도 겪게 되는 고난을 이겨 내면, 그것은 하느님의 은총이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목자의 비유를 드시며 당신과 당신의 사람 사이의 관계를 알려 주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2,14ㄱ.36-41
화답송시편 23(22),1-3ㄱ.3ㄴㄷ-4.5.6(◎ 1)
제2독서
<여러분은 영혼의 목자이신 그리스도께 돌아왔습니다.>2,20ㄴ-25
복음 환호송요한 10,14 참조
복음
<나는 양들의 문이다.>10,1-10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영원한 목자이신 주님, 주님의 거룩한 부르심에 따라 살아가고자 힘쓰는 저희를 보살펴 주시고, 특히 성직과 수도 생활을 지망하는 이들이 그 뜻을 굳건히 지켜 갈 수 있도록 은총을 주소서.
2. 세계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의 샘이신 주님, 세계의 지도자들이 온 인류가 주님 안에서 한 가족임을 깊이 깨닫고, 자기 나라의 이익에 앞서 세계의 진정한 평화를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게 하소서.
3. 자살의 유혹에 흔들리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생명의 주님, 생명을 스스로 끊어 버리려는 유혹에 시달리는 이들을 보살펴 주시어, 그들이 절망 속에서도 주님의 빛을 보고 탄생의 신비를 떠올리며 힘을 얻게 하소서.
4. 가정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이신 주님,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기도하오니, 저희 모든 가정에 건강의 은총을 주시고, 가족들이 서로 관심과 보살핌으로 주님의 참사랑을 실천하며 화목하게 하소서.
예물 기도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영성체송
영성체 후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기에 낯선 이를 따라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우리도 예수님이야말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가끔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인생의 갈림길과 유혹을 만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을 온전히 신뢰하며 그분의 품에 머무른다면 참된 삶의 길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문’에 빗대어 드러내십니다. 그리스 말에 ‘문’은, 안팎을 구분하는 개념의 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드나드는 ‘통교의 자리’를 가리킵니다. 통교하는 문은 안팎을 넘나드는 자유로움을 선사합니다. 그 자유 안에서 예수님과 신앙인은 서로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서로를 닮아 가며, 서로를 통하여 생명을 공유합니다.
‘문’은 그래서 서로를 향한 ‘길’이 됩니다. 길을 걷다 보면 목적지에 다다르고 그 목적지에서 목자와 양들은 서로 만나 풀밭의 행복을 누립니다. 그러나 길을 벗어나 걷게 되면 힘들고 불편해서 목적지에 다다르기는커녕 자기 존재마저 부정하기에 이릅니다.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나는 무엇을 해도 안 돼!’ ……. 자신의 능력이나 의지를 탓하며 세상살이마저 내려놓을까 고민하기에 이릅니다. 고민의 끝은 결국 자신 안에 갇혀 버리는 외톨이의 삶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진정 자유롭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제대로 된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어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 만든 ‘길’이 아니라 통교와 소통, 그리고 서로를 살찌우는 생명으로 열린 길이어야 합니다. 서로의 생각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다름을 같음으로 만들려고 떼쓰듯 덤벼드는 완고한 투정을 내려놓고,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일이 예수님을 찾는 일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늘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신앙한다는 것을 자기 삶의 만족이나 욕망의 충족으로 폄훼하는 어리석음을 더 이상 용인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신앙은 서로의 목소리를 애써 꼼꼼히 듣는 이들의 여유 안에 풍성한 생명으로 거듭납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