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8월 03일 월요일
[녹]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입당송 시편 70(69),2.6
본기도
말씀의 초대
주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주님을 거역한 하난야는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곧 죽는다(제1독서). 베드로는 주님의 명에 따라 물 위를 걷지만 곧 두려움에 사로잡혀 물에 빠진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건지시며 믿음이 약하다고 나무라신다(복음).
제1독서
<하난야, 주님께서 당신을 보내지 않으셨는데도 당신은 백성을 거짓에 의지하게 하였소.>28,1-17
화답송시편 119(118),29.43.79.80.95.102(◎ 68ㄴ 참조)
복음 환호송마태 4,4
복음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14,13-21
14,22-36
예물 기도
영성체송 지혜 16,20 참조
요한 6,35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멍에는 소나 말의 목에 가로 얹는 둥그렇게 구부러진 막대로, 마차나 쟁기처럼 짐을 당기거나 무거운 짐을 옮길 때 힘을 분산시켜 작업을 좀 더 수월하게 수행하는 데 사용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멍에는 ‘예속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예레미야 예언자 시대에는 사람들이 듣기에 좋은 것만을 전하는 거짓 예언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정복한 이의 멍에가 부수어질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독서에서 예레미야는 주님께서 주신 진실을 전하며, 정복자의 나무 멍에가 부수어지지만 실제로는 부수어지지 않을 쇠 멍에로 바뀌는 것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시간이 흘러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당신께서 주시는 멍에는 편하고 당신의 짐은 가볍다고 말씀하십니다(마태 11,30 참조).
그렇다면 가혹한 현실 속에 죽음의 파멸로 이끄는 쇠 멍에가 아닌, 녹록하지 않은 삶 속에서도 우리를 안식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멍에를 받아들이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복음이야말로 그 답이 되겠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께 돌아서서,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외치며, “바다의 등을 밟으시는 분”(욥 9,8)께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곁에 가장 가까이 계실 때는, 우리가 가장 낮은 곳에 있을 때입니다. 우리가 가장 약할 때, 하느님께서는 가장 강하십니다.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낙담할 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신다면, 믿음의 여정을 멈추지 말고 계속 가야만 합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믿음이 약한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께 용기를 내어 다가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라고 참된 신앙 고백을 드려야 합니다. 결국 예수님을 섬기는 일은 예속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 안에서 자신을 기꺼이 내놓는 일입니다.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