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11일 목요일

[백]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마르티노 성인은 316년 무렵 판노니아(현재 헝가리의 솜바테이)의 이교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로마에서 공부한 다음 군인이 된 그는 어느 날 추위에 떨고 있는 거리의 걸인에게 자신의 외투 절반을 잘라 주었다. 그날 밤 꿈속에 그 외투 차림의 예수님께서 나타나시는 신비 체험을 하고 나서 곧장 세례를 받았다. 그 뒤에 사제가 되었으며, 370년 무렵 프랑스 투르의 주교로 뽑혔다. 착한 목자로서 모범을 보이고, 수도원들을 세웠으며, 성직자들을 교육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397년 프랑스 중부의 캉데생마르탱에서 선종하였다. 프랑스 교회의 초석을 놓은 그는 프랑스 교회의 수호성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존경받고 있다.

입당송 1사무 2,35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믿음직한 사제를 세우리니, 그는 내 마음과 생각에 따라 행동하리라.

본기도 

하느님,
복된 마르티노 주교는 그 삶과 죽음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렸으니
저희에게 놀라우신 은총을 새롭게 베푸시어
살아서도 죽어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떠나지 않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지혜서의 저자는, 지혜는 세상 끝까지 힘차게 퍼져 가며, 만물을 훌륭히 통솔한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고 하시며,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7,22ㄴ―8,1
22 지혜 안에 있는 정신은 명석하고 거룩하며
유일하고 다양하고 섬세하며 민첩하고 명료하고 청절하며
분명하고 손상될 수 없으며 선을 사랑하고 예리하며
23 자유롭고 자비롭고 인자하며 항구하고 확고하고 평온하며
전능하고 모든 것을 살핀다.
또 명석하고 깨끗하며 아주 섬세한 정신들을 모두 통찰한다.
24 지혜는 어떠한 움직임보다 재빠르고
그 순수함으로 모든 것을 통달하고 통찰한다.
25 지혜는 하느님 권능의 숨결이고 전능하신 분의 영광의 순전한 발산이어서
어떠한 오점도 그 안으로 기어들지 못한다.
26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며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이다.
27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 안에 머무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28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함께 사는 사람만 사랑하신다.
29 지혜는 해보다 아름답고 어떠한 별자리보다 빼어나며
빛과 견주어 보아도 그보다 더 밝음을 알 수 있다.
30 밤은 빛을 밀어내지만 악은 지혜를 이겨 내지 못한다.
8,1 지혜는 세상 끝에서 끝까지 힘차게 퍼져 가며 만물을 훌륭히 통솔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시편 119(118),89.90.91.130.135.175(◎ 89ㄱ)

◎ 주님, 당신 말씀은 영원하시옵니다.
○ 주님, 당신 말씀은 영원하시고, 하늘에 든든히 세워졌나이다. ◎
○ 당신의 진실 대대로 이어지고, 당신이 세우신 땅 굳게 서 있나이다. ◎
○ 당신 법규대로 오늘까지 서 있나이다. 만물이 당신을 섬기나이다. ◎
○ 당신 말씀 밝히시면 그 빛으로, 미련한 이들이 깨치나이다. ◎
○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빛나게 하시고, 당신 법령을 저에게 가르쳐 주소서. ◎
○ 이 목숨 살려 당신을 찬양하게 하소서. 당신 법규로 저를 도와주소서. ◎

복음 환호송요한 15,5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 알렐루야.

복음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20-25
그때에 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2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23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저기에 계시다.’,
또는 ‘보라, 여기에 계시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24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25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이사 61,1-3ㄹ)와 복음(마태 25,31-40)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 기도 

주 하느님,
거룩한 마르티노 주교를 공경하며 주님께 기꺼이 바치는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저희를 주님께 이끌어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마태 25,40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가장 작은 내 형제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일치의 성사로 힘을 얻은 저희가
모든 일에서 주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고
복된 마르티노 주교를 본받아 자신을 기꺼이 주님께 봉헌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불교에서 선승들이 주고받는 문답을 ‘선문답’이라고 합니다. 진리를 깨친 스승에게 제자가 질문을 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그 대화는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이라기보다는 질문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아닌, 두 사람 각자의 혼잣말 같기도 합니다. 질문을 통하여 진리를 깨치지 못한 이를 더욱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선문답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주제는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시기를 여쭈어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시기가 아니라 그 “모습”에 대하여 답을 하십니다. “여기”, “저기”, “우리 가운데”라고 공간을 이야기하십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사람의 아들”의 날에 대하여 설명하시며 그날이 오기 전에 먼저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우리 안에서 또 다른 질문을 만들어 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이라면 어떻게 볼 수 있는가?’ ‘볼 수 없는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있다는데, 과연 어디에 있는가?’
혼자서는 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들을 되뇌어 봅니다. 그리고 고민해 봅니다. “우리 가운데”, “우리”는 누구를 말하고 있을까요? 나는 어떤 사람들을 ‘우리’라고 말하고 있나요? 너무 쉽게 ‘우리’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 하느님, 우리 성당, 우리 공동체, 우리 가족, 우리 부모님, 우리 친구 ……. ‘나’를 포함한 ‘우리’이기는 하지만, ‘나’라는 말을 대신하여 ‘우리’라는 말을 쓰고 있지는 않은가요? 어째서 일까요? 어쩌면 나와 너, 그리고 그들이 ‘우리’가 되는 순간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는 때가 아닐까요! 나만을 생각하던 그 삶의 공간이 ‘우리’를 먼저 생각하여 행동하는 공간으로 바뀔 때 그 자리가 하느님의 나라가 아닐까요! 물음표가 느낌표가 되는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