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12일 금요일
[홍]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성 요사팟 주교는 1580년 무렵 우크라이나의 동방 교회 가문에서 태어났다. 장사보다는 영혼 문제에 관심이 더 많았던 그는 뛰어난 상인이 되기를 바랐던 부모의 뜻을 저버리고 수도원에 들어갔다. 이후 사제품을 받은 그는 수도원장까지 맡아 수도회 개혁을 주도하였다. 주교가 된 뒤에 교회의 일치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다가 1623년 이교도들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1867년 비오 9세 교황께서 요사팟 주교를 시성하셨다.
입당송
본기도
말씀의 초대
지혜서의 저자는,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그 창조주를 알 수 있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나고,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세상을 아는 힘이 있으면서 그들은 어찌하여 그것들의 주님을 찾아내지 못하였는가?>13,1-9
화답송시편 19(18),2-3.4-5ㄱㄴ(◎ 2ㄱ)
복음 환호송루카 21,28 참조
복음
<그날에 사람의 아들이 나타날 것이다.>17,26-37
예물 기도
영성체송 마태 10,39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얼마 전 ‘섬뜩한 오늘?’이라는 제목의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글에서는 하느님께서 ‘오늘’이라는 일상의 삶 안에 찾아오실 때마다, 인간은 엇갈리게 행동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현재’, ‘오늘’이라는 시간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시간일지 모릅니다. ‘현재’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현재는 지나간 ‘과거’가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오늘’이라는 시간은 해가 뜨고 지고 지구의 자전과 공전으로 발생하는 변화의 측정 단위로서의 물리적 시간이라기보다는, 의식적이고 주관적인 개념으로, 순간의 선택을 통하여 삶의 방향이 바뀌는 기회의 때이며 결단의 때를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해는 중천에 떠 있고 달력은 아직 넘어가지 않은 오늘입니다. 어제와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사람을 만나고 똑같은 곳에서 생활하는 일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에도, 롯 시대에 소돔이 멸망하던 때에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인 오늘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노아와 롯만이 ‘오늘’이라는 일상이 아닌 ‘오늘’이라는 마지막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은 물리적 시간인 ‘오늘’이 아닌 변화와 결단의 때인 ‘오늘’을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섬뜩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또한 내가 변화하고 회개한 때의 시작점인 것처럼 일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모든 순간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