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16일 화요일
[녹]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또는
[백] 스코틀랜드의 성녀 마르가리타 또는
[백] 성녀 제르트루다 동정
입당송 예레 29,11.12.14 참조
본기도
말씀의 초대
뛰어난 율법 학자 엘아자르는 온 민족에게 자기의 죽음을 고결함의 모범과 덕의 귀감으로 남기고 죽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세관장 자캐오의 집에 들어가 묵으시며,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거룩한 법을 위하여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 모범을 남기려고 합니다.>6,18-31
화답송시편 3,2-3.4-5.6-8ㄱㄴ(◎ 6ㄱ)
복음 환호송1요한 4,10
복음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19,1-10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73(72),28
마르 11,23.24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지난 7월, 미사를 부탁받아 한 본당을 찾았습니다. 마침 『매일미사』에 묵상 글을 썼던 달이라 강론을 묵상 글의 내용으로 할까 생각하였습니다. ‘내가 묵상한 글이고 내가 살아왔던 나의 이야기이니 괜찮지 않을까?’ 잠시 고민하였지만, 새롭게 준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다르고, 듣는 사람들이 다르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또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변하지 않지만 복음을 듣는 우리가 변하기에, 그 의미와 메시지도 때마다 다르게 전달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어쩌면 그러한 마음이 성경에 대한 저의 열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열정이 변하지 않고 지치지 않는 저의 목표가 되었으면 합니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은 열정이 사라집니다.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현실에 안주하기 쉽습니다. 자캐오는 부자이면서도 그 돈이 자신의 권력이 되어 버린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였습니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면 그는 계속 세관에 앉아 있었을 것입니다. 더 큰 권력을 얻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다면 그는 권력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예수님을 보고 싶은 열망만이 있었습니다. 현실적인 어려움(예수님을 보려고 모인 많은 사람, 키가 작으며, 공동체에서 소외당하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그 열망이 위기에 부딪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캐오가 예수님과 시선을 맞추고 예수님을 만나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변화하고 구원되는 모든 과정의 시작은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않는 열망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간절함입니다.
예수님을 보고 싶은 열망, 그분과 눈을 맞추고 싶은 열망, 그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열망, 그분처럼 살아가고 싶은 열망, 그분처럼 사랑하고 싶은 간절함,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간절함이 우리를 예수님께 인도할 것이고, 그분께서는 우리의 손을 잡고 당신의 품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지금 어떤 열망과 간절함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