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17일 수요일
[백]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엘리사벳 성녀는 1207년 헝가리에서 공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신심이 깊었던 그는 남부럽지 않게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참회와 고행의 생활을 하며 많은 사람에게 자선을 베풀었다. 그는 남편이 전쟁에서 사망하자 재속 프란치스코회에 들어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병원을 세워 직접 병자들을 돌보았다. 1231년 스물네 살에 선종한 그는 자선 사업의 수호성인이자, 재속 프란치스코회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입당송 마태 25,34.36.40 참조
시편 112(111),9
본기도
말씀의 초대
일곱 형제가 어머니와 함께 체포되어, 법으로 금지된 돼지고기를 먹으라는 임금의 명령을 거부하고 모두 죽음을 받아들인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미나의 비유를 드신다(복음).
제1독서
<온 세상의 창조주께서,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다시 주실 것이다.>7,1.20-31
화답송시편 17(16),1.5-6.8과 15(◎ 15ㄴ 참조)
복음 환호송요한 15,16 참조
복음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19,11ㄴ-28
예물 기도
영성체송 요한 15,13
요한 13,35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복음에 따라 살아가고자 우리는 ‘순명’(順命, oboedientia)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필리 2,8)하셨기에, 그 삶을 본받아 순명의 삶을 살아가라고 교회는 권고합니다. 사제로서 그 삶은 선택이 아닌 의무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순명의 마음을 가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주교님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내 나름대로 하고 싶은 일도 있고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지만, 저에게 그 일을 명하지 않으십니다. 때로는 반대되는 것을 명령하시고, 원하지 않는 것도 명하십니다. 쉬운 길이 있는데 어렵게 돌아가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그 명령을 따릅니다. ‘자신을 희생하며 의지를 가지고 기쁜 마음으로 명령을 따르는 것이 순명’이지만, 가끔은 그 안에 희생과 의무만 있고 기쁨은 사라져 버릴 때도 있는 듯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미나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평생을 주인 곁에서 심부름만 하던 종들에게, 주인이 나누어 준 돈으로 벌이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처음 해 보는 일이라 막막하기도 하고, 주인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잘못해서 돈을 잃으면 벌이 기다리고 있음에 두렵기도 했겠지요. 어떤 종은 주인이 이 과제를 주며 명령한 이유와 주인의 생각이 과연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행동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의도와는 다르다고 비판하고 짜증 내고 불평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그 과제 안에서 자신의 이유를 찾으려 고민합니다. 그러나 어떤 종은 불평과 불만, 두려움과 나태함으로 그런 고민조차 하지 않고 그냥 “예.”라고 대답만 할 뿐입니다.
순명의 가치는 같은 것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것을 위에서 내려다볼 때와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 모습은 다르지만 분명 같은 것을 보고 있다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으로 이해하려 고민하고, 행동하려 고민하고, 같은 것을 같은 모습으로 바라보며 고민하는 흔적이 순명의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순명의 길을 오늘도 나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