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9월 17일 화요일
[녹] 연중 제24주간 화요일 또는
[백] 성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주교 학자
입당송 집회 36,21-22 참조
본기도
말씀의 초대
제1독서
<감독은 나무랄 데가 없어야 합니다. 봉사자들도 마찬가지로 깨끗한 양심으로 믿음의 신비를 간직한 사람이어야 합니다.>3,1-13
화답송시편 101(100),1-2ㄱㄴ.2ㄷㄹ-3ㄱㄴ.5.6(◎ 2ㄹ)
복음 환호송루카 7,16
복음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7,11-17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36(35),8
1코린 10,16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어느 부둣가에서 물에 빠져 죽어 가는 사람을 구해 주지 않고 구경만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수영도 잘하는 건장한 사람이었습니다. 숨진 사람의 가족이 그를 신고하여 재판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합니다. 죽어 가는 사람들을 일일이 다 구해 주어야 할 의무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다는 것이 사회에서는 감옥에 가야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서는 이런 상황이라면 유죄 판결이 내려질 것입니다. 심판의 기준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무 이유 없이 과부의 외아들을 살려 주십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가엾은 마음”이 드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주위에서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엾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가엾은 마음이 바로 하늘에 계시던 하느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게 만든 힘인 것입니다.
이 “가엾은 마음”이 나의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나를 움직이게 합니다. 사랑하면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서 나의 도움이 필요한 수많은 사람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들을 방관한다면 주님 앞에 가서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1요한 4,20)라고 말합니다.
방관도 살인입니다. 나에게 “가엾은 마음”이 있는지요? 내 주위에는 가난한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움직이고 내 주위에는 어떤 사람들이 많은지요?
(전삼용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