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1월 31일 금요일
[백]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요한 보스코 성인은 1815년 이탈리아 토리노의 카스텔 누오보 근처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양을 치며 가난하게 살았지만, 어머니에게 엄격한 신앙 교육을 받으며 자라 사제가 되었다. 특히 청소년을 사랑하였던 그는 젊은이들의 교육에 심혈을 기울여 오다가, 가난한 젊은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그리스도교 생활을 익히게 하고자 1859년 살레시오회를 세우고, 1872년에는 살레시오 수녀회도 세웠다. ‘고아들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19세기의 탁월한 교육자로 꼽히는 그는 1888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1934년에 시성되었다.
입당송 시편 132(131),9 참조
본기도
말씀의 초대
제1독서
<너는 나를 무시하고, 우리야의 아내를 데려다가 네 아내로 삼았다 (2사무 12,10 참조).>11,1-4ㄱㄷ.5-10ㄱ.13-17
화답송시편 51(50),3-4.5-6ㄱㄴ.6ㄷㄹ-7.10-11(◎ 3ㄱ 참조)
복음 환호송마태 11,25 참조
복음
<씨를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는데, 그 사람은 모른다.>4,26-34
예물 기도
영성체송 마태 24,46-47 참조
루카 12,42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마르코 복음의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 그분 자체를 말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참된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라고 마르코 복음은 재촉합니다. 마르코 복음 막바지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고 이방인인 백인대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르 15,39).
메시아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우며 또한 멋스러워야 하고 힘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가 당시 유다 사회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셨지요. 세상의 논리로 보자면 실패 그 자체인 십자가, 그 십자가를 지신 분을 메시아로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의 당위에 대한 저항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대개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오늘을 애쓰며 살아갑니다. 신앙이 목적을 가지는 순간, 오늘, 지금의 시간에 대하여 결핍 의식을 지닐 때가 가끔 있습니다. ‘아직 멀었어. 좀 더 노력해야 돼.’라고 되뇌이며 내일의 희망찬 하느님 나라를 꿈꿉니다.
그러나 바로 이 자리, 이 시간에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또한 하느님 나라는 ‘저절로’ 자라납니다.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하느님 나라의 실재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는 이미 오신 예수님을 통하여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맞갖게 사는 것은 오늘 ‘이렇게 해야 돼!’라는 당위를 다시 한번 되짚어 물어보는 일에서 시작합니다. 오늘의 ‘당위’가 어떤 이를 겁박하고 억압하는 일은 없는지, 오늘 나에게 당연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고통과 짐으로 여겨지는 일은 없는지 물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지금 우리 곁에, 이 자리에서 커져 갑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