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5월 29일 금요일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오늘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의 동료 순교 복자들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 124위 복자들은 103위 성인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순교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고 각 지역에서 현양되던 한국 천주교회의 초기 순교자들이다.
대표 순교자인 윤지충 복자의 순교일은 12월 8일이지만, 이날은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이다. 이 때문에 한국 교회는 그가 속한 전주교구의 순교자들이 많이 순교한 5월 29일을 기념일로 정하고 순교자 현양을 위하여 성대하게 지내도록 하였다. 한편 교구장의 재량에 따라 성 바오로 6세 교황 기념일도 선택하여 거행할 수 있게 하였다(주교회의 2019년 추계 정기 총회).
입당송 마태 25,34 참조
본기도
말씀의 초대
요한은, 형제들을 고발하던 자를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이겨 냈다고 하는 소리를 듣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들은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12,10-12ㄱ
화답송시편 34(33),2-3.4-5.6-7.8-9(◎ 5ㄴ 참조)
복음 환호송야고 1,12
복음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12,24-26
예물 기도
감사송
<순교자 감사송 1 : 순교자들의 증거와 모범>영성체송 묵시 2,7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하느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해 주리라.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사람은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보고 싶은 대로 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그대로 보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바라는 예수님을 만들어 냅니다. 잘못된 신앙이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나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돌아가심으로써 세상에 생명을 주셨는데, 우리는 죽어 가는 길을 살고자 하는 길과 대척점에 놓고 늘 죽음을 회피하고는 합니다.
김영민 교수가 쓴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게 좋다’라는 칼럼이 있습니다. 아침부터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닐 테지요. 김영민 교수는 살고자 아우성치는 우리 한국 사회가 죽음의 문화에 무참히 갇힌 이유를 역설적이게도 죽지 않으려는 오만과 탐욕의 결과로 봅니다. 오히려 죽었다 생각하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일이 우리에게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 살려고 바둥대다 보면 서로를 죽이게 됩니다. 서로 움켜쥐려고 애쓰다 보면,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고 미워 보이고 심지어 해치고 싶은 마음까지 가지게 될지 모릅니다. 밀알이 되어 죽어 가는 것이 오히려 우리를 살리는 일이라는 사실은 명확합니다.
우리 나라의 수많은 순교 성인들의 생애가 그러할 것입니다. 남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 세상의 생명은 더욱 풍요로워집니다. 굳이 어려운 일을 찾기보다 지금 나의 자리에서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여유를 지녔으면 합니다. 이것만이 아닌 다른 무엇이 있음을 생각하는 여유 속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이 세워 놓은 탐욕을 없애고 다른 이와 함께 나눌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