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6월 30일 수요일
[녹] 연중 제13주간 수요일 또는
[홍] 로마 교회의 초기 순교자들
입당송 시편 47(46),2
본기도
말씀의 초대
아브라함은 사라의 청으로 여종인 하가르와 그가 낳아 준 아들을 내보내는데, 하느님께서는 광야에서 울부짖는 하가르에게 아들을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가다라인들의 지방에서 마귀 들린 두 사람에게서 마귀를 몰아내 돼지 떼 속에 들어가게 하시어 그들을 고쳐 주신다(복음).
제1독서
<저 여종의 아들이 내 아들 이사악과 함께 상속을 받을 수는 없어요.>21,5.8-20
화답송시편 34(33),7-8.10-11.12-13(◎ 7ㄱ)
복음 환호송야고 1,18 참조
복음
<예수님께서는 때가 되기도 전에 마귀들을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다.>8,28-34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103(102),1
요한 17,20-21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하가르와 그 아들 이스마엘을 쫓아내라고 졸라 대자 하느님께서는 사라의 부탁을 들어주라 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느님 말씀대로 행동합니다. 그 결과 하가르와 이스마엘은 집에서 쫓겨납니다. 그들을 생각하면 하느님과 사라가 너무 냉정해 보입니다. 그 냉정함은 호칭에서 드러납니다. 사라는 “저 여종과 그 아들”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녀에게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아들도 아니고 그저 여종의 아들일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이스마엘을 ‘네(아브라함) 아들’이 아니라 “그 아이”라고 부르십니다. 이에 이런 질문을 던져 봅니다. 하느님과 사라에게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아들이기는 한 것일까요?
창세기의 저자는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이름이 바뀌기 전에 태어났음에 주목합니다. 하느님과 계약을 맺기 이전, 아브라함의 이름은 ‘아브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마엘은 ‘아브람’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이사악은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그가 새로운 이름을 얻은 뒤에 얻게 된 아들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께 상속을 약속받은 인물은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사악입니다(창세 17,19 참조). 오늘 독서는 가족 간의 갈등을 전해 주는 냉정한 가족사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하느님 약속이 바탕이 된 상속에 위협이 되는 상황을 하느님께서 해결하시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바로 구원의 역사입니다.
우리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하느님께 항변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시냐고, 계시기는 한 것이냐며,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의 처지이고 우리의 생각일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계획은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외아드님의 죽음으로 완성됩니다. 지금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는 그분의 계획이 잘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감추어진 하느님의 의도가 있음을 믿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