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4월 01일 금요일
[자] 사순 제4주간 금요일
입당송 시편 54(53),3-4 참조
본기도
말씀의 초대
지혜서는, 악인들이 의인을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하며 수치스러운 죽음을 안기려 작당한다고 꾸짖는다(제1독서).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 하였으나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에 그분께 손을 대지 못한다(복음).
제1독서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2,1ㄱ.12-22
화답송시편 34(33),17-18.19-20.21과 23(◎ 19ㄱ)
복음 환호송마태 4,4
복음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7,1-2.10.25-30
예물 기도
감사송
<사순 감사송 1 : 사순 시기의 영성적 의미>영성체송 에페 1,7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백성을 위한 기도
<자유로이 바칠 수 있다.>오늘의 묵상
고대 유다교 전통에 따라 ‘초막절’은 포도를 거두어들이는 9월에 지냅니다(탈출 23,16; 레위 23,33-44; 신명 16,13-17 참조). 이때에 하느님께서 베푸신 한 해의 수확에 대하여 감사드릴 뿐만 아니라,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히브리 백성을 해방하셨던 하느님의 은총을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 한편 구약 후기 문헌에 따르면, 초막절 축제는 메시아 시대에 펼쳐질 하느님의 축복을 예고하는 예언적 특징도 담고 있었습니다(즈카 14,16-19 참조).
오늘 복음은 이 같은 배경 속에서 읽을 때 더 풍성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초막절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구약의 백성이 오랫동안 기다려 온 메시아께서 초막절 축제를 지내시러 예루살렘에 도착하셨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당시 유다교 지도자였던 최고 의회 의원들이 그분을 죽일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참으로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구세주 메시아를 눈앞에 두고서 알아뵙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유다인들, 그리고 예루살렘 주민들의 모습입니다.
어쩌면 이와 비슷한 상황을 우리도 일상에서 때때로 경험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복음 정신과 신앙의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세상 속에 매몰되어 현세적 가치를 좇을 것인가? 이 갈림길에서 종종 갈팡질팡합니다. 이처럼 나약한 우리를 하느님께 이끌어 주시는 참된 길이신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