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4월 11일 월요일
[자] 성주간 월요일
입당송 시편 35(34),1-2; 140(139),8 참조
본기도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의 종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발에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아 드리는 마리아를 놔두고, 당신의 장례 날을 위하여 기름을 간직하게 하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는 외치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주님의 종’의 첫째 노래).>42,1-7
화답송시편 27(26),1.2.3.13-14(◎ 1ㄱ)
복음 환호송
복음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12,1-11
예물 기도
감사송
<주님 수난 감사송 2 : 수난의 승리>영성체송 시편 102(101),3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백성을 위한 기도
<자유로이 바칠 수 있다.>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하나의 장례처럼 여기는 상징적인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복음서들에 따르면, 향유를 붓는 행위는 장례 의식의 일부로 여겨졌습니다(마태 26,12; 마르 14,8; 요한 12,7 참조). 고대 유다교 전통에서도 장례는 당시 유다인들과 유다교 출신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권장되었던 선행 가운데 하나였습니다(토빗 1,17-18; 사도 9,36-37 참조). 후대 유다교 라삐들에게 장례는 단순한 자선을 뛰어넘는 것으로서, 빈부 격차에 상관없이 산 이들과 죽은 이들 모두에게 베풀 수 있는 선행으로 이해되었습니다(마태 25,35-45; 마르 15,42-47; 사도 8,2 참조).
이런 맥락에서 오늘 복음을 묵상합니다. 라자로의 누이, 마리아가 향유 한 리트라, 곧 320그램 정도를 부어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립니다. 이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는 예언적 행위이며, 그분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는 선행을 상징합니다. 마리아의 이 선행은 예수님께서 늘 제자들과 ‘물리적으로 함께 계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종말론적 행위를 의미합니다(마태 26,11; 마르 14,7; 요한 12,8 참조).
그러나 예수님께서 겪으실 수난과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유다, 예수님께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를 하나의 ‘표징’으로 확인하려고 몰려든 유다인들, 그리고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예수님을 믿게 되자 그분과 함께 라자로까지 죽이기로 결의하는 수석 사제들이 있습니다. 성주간 월요일에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앞에 어떤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모습은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 가운데 누구에 가깝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