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7월 21일 목요일
[녹]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또는
[백] 브린디시의 성 라우렌시오 사제 학자
입당송 시편 54(53),6.8
본기도
말씀의 초대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생수의 원천이신 주님을 저버리고, 물이 고이지 못하는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팠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들은 생수의 원천인 나를 저버렸고 제 자신을 위해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팠다.>2,1-3.7-8.12-13
화답송시편 36(35),6-7ㄱㄴ.8-9.10-11(◎ 10ㄱ 참조)
복음 환호송마태 11,25 참조
복음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13,10-17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111(110),4-5
묵시 3,20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에서 “너희”와 “저 사람들”이 대조적인 상황에 놓여 있음을 보게 됩니다. ‘너희’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듣고 깨달으며 하느님 나라를 보고 이를 알아보는 이들이지만, ‘저 사람들’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인용된 이사야서의 말씀에 따르면, 이는 마음이 무디고 귀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입니다(6,9-10 참조).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지 못하고 그분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들은 그저 ‘쇠귀에 경 읽기’일 따름입니다.
‘선택적 집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이고, 듣고 싶은 것만 들리는 현상을 일컫습니다. 죄로 양심이 무디어지고, 자신의 실속과 세상 것에만 눈과 귀를 발달시키면 영적인 눈과 귀는 점차 제 기능을 잃어 갑니다. 그런 “저 사람들”과 다르게 예수님께서는 보고 들을 수 있는 제자들의 눈과 귀를 두고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영적 감각이 살아 있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운동선수가 경기에 참여하지 않을 때에도 신체 감각을 유지하고자 훈련을 하듯 그리스도인은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 훈련, 공동체와 세상을 위하여 좋은 일을 찾는 훈련,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키우는 훈련으로 영적인 감각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께 우리의 눈과 귀를 축복해 주시기를 청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