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9월 07일 수요일
[녹]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입당송 시편 119(118),137.124
본기도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 현재의 재난 때문에 지금 그대로 있는 것이 사람에게 좋겠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시며,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하고 선언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대는 아내에게 매여 있습니까? 갈라서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대는 아내와 갈라졌습니까? 아내를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7,25-31
화답송시편 45(44),11-12.14-15.16-17(◎ 11ㄱ)
복음 환호송루카 6,23 참조
복음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6,20-26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42(41),2-3
요한 8,12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마태오 복음의 참행복 선언(마태 5,3-12 참조)은 ‘산상 설교’(5─7장)의 첫머리에 놓여, 시나이산에서 주어진 구약 율법을 완성하는 ‘신약의 새 모세’로 예수님을 내세웁니다. 한편 오늘 루카 복음의 참행복과 불행 선언은(루카 6,20-26 참조) ‘평지 설교’(6,17-49)에 속한 대목으로, 산에서 평지로 내려오시어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백성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하여 ‘하느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각각 네 가지로 구성된 행복 선언과 불행 선언은 대칭을 이루며 서로 그 뜻을 밝혀 줍니다. ‘가난한 이들’이 ‘부유한 이들’과 달리 행복하다고 말씀하신 까닭은, 자신의 미소함을 인정하고 오직 하느님께만 의탁하는 이 사람들이야말로 그분의 현존과 은총 속에서 진실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특히 저 먼 미래의 무엇이 아닌 “지금”(21.25절)의 삶을 잘 살피고, 하느님 없이 자만자족하는 부자가 되기보다는 그분께 희망을 두기에 당장의 불편과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겨 낼 줄 아는 ‘스스로 가난하게 된 사람’, 곧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상속자가 되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부유하고 즐겁기만 한 삶에 익숙해진 이는 그것을 잃어버릴까 늘 두려워하고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데 필요하다면 스스로 세상의 가치를 내려놓는 ‘결핍’에 익숙해진 신앙인은(제1독서 참조), 세상일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평정심과 확신을 잃지 않습니다. 오직 하느님께서만 주시는 그 온전한 ‘자유’를 현세에서부터 미리 누리며 살다가, 장차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우리야말로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