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9월 28일 수요일
[녹] 연중 제26주간 수요일 또는
[홍] 성 벤체슬라오 순교자 또는
[홍] 성 라우렌시오 루이스와 동료 순교자들
입당송 다니 3,29.30.31.43.42 참조
본기도
말씀의 초대
욥은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어찌 의롭다 하며 누가 그분과 겨루겠냐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고 하시며,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어찌 의롭다 하겠는가?>9,1-12.14-16
화답송시편 88(87),10ㄴㄷ-11.12-13.14-15(◎ 3ㄱ 참조)
복음 환호송필리 3,8-9 참조
복음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9,57-62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119(118),49-50 참조
1요한 3,16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따라나서려던 세 사람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들이 예수님과 나눈 대화마다(루카 9,57.59.61 참조) ‘주님을 추종하여 따름’을 표현하는 특별한 그리스어 동사 ‘아콜루테오’(따르다)가 사용되는데, 이 단어는 앞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마태오가 그분을 따라나선 대목에서도 사용됩니다(루카 5,11.27.28 참조). 이를 통하여 루카 복음사가는, 이 세 사람의 어정쩡한 태도를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섰던 제자들의 모습과 병행시켜 대조적으로 드러냅니다.
첫 번째 사람은 “어디로 가시든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장담하지만, 이는 마땅한 거처도 없이 공생활 내내 떠돌아다니시던 예수님과 일행의 삶을 알지 못한 채 드린 공허한 다짐일 뿐입니다. 또 두 번째와 세 번째 사람은 각각 아버지의 장례와 가족들과의 작별 인사를 더 우선시합니다. 물론 유다인들에게 장례는 자식의 마땅한 도리고(토빗 4,3-4; 14,11-13 참조) 가족들과의 작별 인사 또한 인지상정이지만, 그 어떤 관행이나 기본적인 도리도 결코 주님을 따르는 일보다 앞설 수는 없습니다. 제1독서에서 욥은 “그분께서 잡아채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누가 그분께 ‘왜 그러십니까?’ 할 수 있겠나?”라며, 하느님께 순명하는 데는 그 어떤 조건이나 타협도 있을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차마 세상의 방식대로 할 수 없어 무엇인가를 포기해야만 하고 신앙 때문에 불편을 겪을 때마다, ‘그래, 내가 지금 주님을 올바로 따르고 있구나!’라고 확신하며 기뻐해야 합니다. 사람의 일이 결코 하느님의 일보다 먼저일 수 없다는 소신을 품고서, 쟁기를 잡고 뒤돌아보지 말고 단호히 구원 여정을 이어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