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1월 31일 수요일
[백]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요한 보스코 성인은 1815년 이탈리아 토리노의 카스텔 누오보 근처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양을 치며 가난하게 살았지만, 어머니에게 엄격한 신앙 교육을 받으며 자라 사제가 되었다. 특히 청소년을 사랑하였던 그는 젊은이들의 교육에 심혈을 기울여 오다가, 가난한 젊은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그리스도교 생활을 익히게 하고자 1859년 살레시오회를 세우고, 1872년에는 살레시오 수녀회도 세웠다. ‘고아들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19세기의 탁월한 교육자로 꼽히는 그는 1888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1934년에 시성되었다.
입당송 시편 132(131),9 참조
본기도
제1독서
<인구 조사를 하여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이 양들이야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24,2.9-17
화답송시편 32(31),1-2.5.6.7(◎ 5ㄹ 참조)
복음 환호송요한 10,27 참조
복음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6,1-6
예물 기도
영성체송 마태 24,46-47 참조
루카 12,42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이 일어나다니!”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으며 놀라워합니다. 그러나 이 놀라움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은 나자렛 사람들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왜 그분을 믿지 못하였을까요?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하느님의 힘을 보면서도 왜 못마땅하게 여겼을까요? 그들 눈에 예수님께서는 그저 ‘목수의 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가족들에 대하여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이, 그분을 메시아로 그리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 것입니다.
누군가에 대하여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어쩌면 그 사람에 대하여 가장 모르고 있는 순간일 수 있습니다.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선입견이 되어서, 그 사람에 대하여 더 알려고 하는 마음을 없애 버리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런 일들은 부모와 자녀, 부부와 같이 아주 가까운 사이에서 자주 일어납니다.
여러분의 모든 관계에서 ‘들음’이 중단되지 않게 하십시오. 듣는 것이 멈춘 관계는 상대방에 대한 앎 또한 멈춘 관계입니다. 하느님과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듣는 것이 멈춘 신앙생활은 그분에 대한 앎이 멈춘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처럼 그분을 믿지 못하는 신앙생활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임마누엘), 함께 계셔도 그분께서 누구이신지 전혀 알지 못하는, 아니 오히려 그분을 알려고 하지 않는 불행한 신앙인이 되어 버립니다. 만일 신앙의 기쁨이 사라지고 있다면, 여러분의 믿음이 듣는 것을 멈춘 것은 아닌지 한번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모든 관계의 회복은 진실하게 듣는 데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