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2월 23일 금요일
[자] 사순 제1주간 금요일
입당송 시편 25(24),17-18 참조
본기도
제1독서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18,21-28
화답송시편 130(129),1-2.3-4.5와 6ㄴㄷ-7ㄱ.7ㄴㄷ-8(◎ 3)
복음 환호송에제 18,31 참조
복음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5,20ㄴ-26
예물 기도
감사송
<사순 감사송 1 : 사순 시기의 영성적 의미>영성체송 에제 33,11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백성을 위한 기도
<자유로이 바칠 수 있다.>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분노에 대하여 묵상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인해서는 안 된다.”라는 십계명의 규정을 풀이하여 심화시키십니다. 바리사이들에게 의로움이란 조문에 쓰인 극단적 행위를 삼가는 것이지만, 예수님께는 그러한 행위로 나아가게 하는 싹을 잘라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계명을 ‘분노하지 마라.’, ‘분노를 한 사람과 화해하여라.’라는 뜻으로 풀이하십니다. 문자 그대로 살인만 금하는 것이 아니라, 살인의 원천이 되는 분노라는 감정까지 제어하라고 이르십니다. 그래서 이웃에게 성내는 것을 금지하시고, 나에게 원망을 품은 이들과도 화해하기를 바라십니다.
교부들은 분노를 두 가지로 구분하였습니다. 첫 번째 분노는 오늘 복음에서 말한 분노로서 영혼이 굳는 병입니다. 이는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그 뿌리마저 뽑아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분노도 있습니다. 죄악과 불의 앞에서 일어나는 분노, 악으로 억압받고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사랑에서 솟아나는 분노입니다.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든 것을 보시고 상을 뒤엎어 버리신 예수님의 분노나 구약에서 불의 앞에서 드러내시는 하느님의 분노가 이러한 분노입니다. 이 두 번째 분노는 이유가 있는 분노로, 성내지 않으면 오히려 죄가 되는 분노입니다. 무질서한 것을 올바르게 질서 잡으려는 분노는 정당합니다. 이것은 정의와 사랑을 위한 ‘거룩한 분노’로 일컬어집니다.
지금 나에게 분노가 일어났을 때, 그것이 이기심에서 오는 분노인지, 의로움을 지향하는 분노인지 식별하여야 합니다. 불의 앞에서 분노하지 못하는 것은 덕이 아니라, 죄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거룩한 분노일 때도 그 분노의 부정적인 감정에 잠식되어 자신을 스스로 파괴하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 드리는 겸손도 함께 지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