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 연중 제12주일

오늘 전례 

오늘은 연중 제12주일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기억하면서 구원의 신비를 기념하는 이 미사는, 거센 풍랑이 몰아치는 세상 속에서도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도록 도움을 주는 믿음과 희망의 원천이 됩니다. 우리를 당신 곁으로 불러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무릅시다.

입당송 시편 28(27),8-9 참조

주님은 당신 백성의 힘이시며, 당신 메시아에게는 구원의 요새이시다. 주님,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고, 당신 재산에 강복하시며, 그들을 영원히 이끌어 주소서.

본기도 

주님,
저희를 한결같이 사랑하시고 끊임없이 보살피시니
저희가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두려워하며
언제나 사랑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너의 도도한 파도는 여기에서 멈추어야 한다.>
▥ 욥기의 말씀입니다.
38,1.8-11
1 주님께서 욥에게 폭풍 속에서 말씀하셨다.
8 “누가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었느냐?
그것이 모태에서 솟구쳐 나올 때,
9 내가 구름을 그 옷으로, 먹구름을 그 포대기로 삼을 때,
10 내가 그 위에다 경계를 긋고 빗장과 대문을 세우며
11 ‘여기까지는 와도 되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
너의 도도한 파도는 여기에서 멈추어야 한다.’ 할 때에 말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시편 107(106),23-24.25-26.28-29.30-31(◎ 1 참조)

◎ 주님을 찬송하여라, 그분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 배를 타고 항해하던 이들, 큰 물에서 장사하던 이들. 그들은 주님의 업적을 보았네. 깊은 바다에서 그분의 기적을 보았네. ◎
○ 그분 말씀에 사나운 바람 일자, 커다란 파도가 높이 솟았네. 그들이 하늘로 솟았다가 바다 깊이 떨어지니, 그들 마음이 괴로움에 녹아내렸네. ◎
○ 곤경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자, 역경에서 그들을 빼내 주셨네. 광풍을 순풍으로 가라앉히시니, 거친 파도 잔잔해졌네. ◎
○ 바다가 잠잠해져 기뻐하는 그들을, 원하는 항구로 그분은 이끄셨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자애를, 사람들에게 베푸신 그 기적을. ◎

제2독서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5,14-17
형제 여러분,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한 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고
그리하여 결국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우리가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15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있는 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아무도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였을지라도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이해하지 않습니다.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루카 7,16

◎ 알렐루야.
○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나셨네.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네.
◎ 알렐루야.

복음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35-41
35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36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37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38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4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41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의 샘이신 주님, 주님의 교회를 일깨워 주시어 성자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의 계명을 깊이 깨달아, 저희 민족이 참된 회개를 통하여 화해와 일치를 위한 구원의 길로 나아가는 데 앞장서게 하소서.

2.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지혜의 샘이신 주님, 주님의 평화를 갈망하는 이들의 호소를 굽어살피시어, 정치 지도자들이 무력으로는 결코 평화를 이룰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시고, 이 세상에 힘이 아닌 사랑이, 전쟁이 아닌 참평화가 꽃피게 하소서.

3. 전쟁으로 희생된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비로우신 주님, 전쟁으로 희생된 무고한 생명들, 특별히 6·25 전쟁으로 희생된 영혼들을 기억하며 비오니, 그들이 하느님의 위로와 자비로 하느님 나라에 들게 하시고, 전쟁의 상처로 얼룩진 한반도가 평화의 땅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4. 우리 자신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이신 주님, 저희를 지켜 주시어, 저마다 주님의 소중한 자녀임을 깨닫고,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족과 이웃, 사회와 저희 민족, 나아가 온 세상을 위하여 마음을 모아 기도하게 하시며, 언제 어디서나 평화를 이루는 도구가 되게 하소서.

예물 기도 

주님,
화해와 찬미의 제물을 받으시고
저희가 이 제사의 힘으로 깨끗해져
사랑과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연중 주일 감사송 2 : 구원의 신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 많은 인류를 가엾이 여기시어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시고
십자가의 고통을 받으시어
저희를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하셨으며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시편 145(144),15 참조

주님, 눈이란 눈이 모두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은 제때에 먹을 것을 주시나이다.
<또는>
요한 10,11.15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위하여 내 목숨을 내놓는다.

영성체 후 묵상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밤이 되었기 때문에, 풍랑이 일기 때문에 겁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겁이 나는 것입니다. 거칠게 풍랑이 이는 밤이어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을 제대로 안다면 결코 두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인자하신 주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저희를 새사람이 되게 하셨으니
저희가 거행하는 이 성사로 완전한 구원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오늘의 묵상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찾는 데에는 언제나 불확실함이 있으며, 만일 너무나 확실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느님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매사에 하느님을 찾고 발견하려는 일에는 여전히 불확실성의 영역이 남아 있습니다. 그분은 거기에 계셔야 합니다. 누군가가 하느님을 확실히 만났다고 말하면서도 불확실성의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는다면,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 어떤 사람이 모든 질문에 답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지 않는다는 표지입니다”(『나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안토니오 스파다로와의 대담).
인간은 하느님의 신비를 완전히 알 수 없기에, 너무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분의 뜻을 알고자 노력할 뿐이고, 그 노력으로 숨겨진 의미를 아주 조금씩 깨달을 수 있을 뿐입니다. 세상의 모순과 고통, 예기하지 못한 사고, 소중한 이와 헤어짐 등 어떻게 이 모든 것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듯한 이유를 붙일 수야 있겠지만, 사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인지 자신의 생각인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유한한 인간은 믿음을 가지고 겸손하게 그분의 뜻을 찾는 여정을 걸어갈 뿐입니다.
제1독서의 욥은 하느님의 뜻을 찾아 모험에 나섰습니다. 그의 눈으로는 무고한 의인의 고통, 아무 이유를 찾을 수 없는 불행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는 그저 하느님을 만나 자신의 고통을 토로하고, 이 고통의 이유와 의미를 묻고자 합니다. 이에 대하여 결국 하느님께서 응답하십니다.
하느님의 답변은 인간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분의 크심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그분의 크심은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고통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인간 사고의 틀 안에 가두기보다,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그분의 크심을 인정하고, 불확실성 안에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나아가는 것이 우리 신앙인의 올바른 태도일 것입니다. 그럴 때 알 수 없는 고통의 신비를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