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6월 23일 일요일
[녹] 연중 제12주일
오늘 전례
오늘은 연중 제12주일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기억하면서 구원의 신비를 기념하는 이 미사는, 거센 풍랑이 몰아치는 세상 속에서도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도록 도움을 주는 믿음과 희망의 원천이 됩니다. 우리를 당신 곁으로 불러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무릅시다.
입당송 시편 28(27),8-9 참조
본기도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너의 도도한 파도는 여기에서 멈추어야 한다.>38,1.8-11
화답송시편 107(106),23-24.25-26.28-29.30-31(◎ 1 참조)
제2독서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5,14-17
복음 환호송루카 7,16
복음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4,35-41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의 샘이신 주님, 주님의 교회를 일깨워 주시어 성자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의 계명을 깊이 깨달아, 저희 민족이 참된 회개를 통하여 화해와 일치를 위한 구원의 길로 나아가는 데 앞장서게 하소서.
2.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지혜의 샘이신 주님, 주님의 평화를 갈망하는 이들의 호소를 굽어살피시어, 정치 지도자들이 무력으로는 결코 평화를 이룰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시고, 이 세상에 힘이 아닌 사랑이, 전쟁이 아닌 참평화가 꽃피게 하소서.
3. 전쟁으로 희생된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비로우신 주님, 전쟁으로 희생된 무고한 생명들, 특별히 6·25 전쟁으로 희생된 영혼들을 기억하며 비오니, 그들이 하느님의 위로와 자비로 하느님 나라에 들게 하시고, 전쟁의 상처로 얼룩진 한반도가 평화의 땅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4. 우리 자신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이신 주님, 저희를 지켜 주시어, 저마다 주님의 소중한 자녀임을 깨닫고,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족과 이웃, 사회와 저희 민족, 나아가 온 세상을 위하여 마음을 모아 기도하게 하시며, 언제 어디서나 평화를 이루는 도구가 되게 하소서.
예물 기도
감사송
<연중 주일 감사송 2 : 구원의 신비>영성체송 시편 145(144),15 참조
요한 10,11.15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밤이 되었기 때문에, 풍랑이 일기 때문에 겁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겁이 나는 것입니다. 거칠게 풍랑이 이는 밤이어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을 제대로 안다면 결코 두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찾는 데에는 언제나 불확실함이 있으며, 만일 너무나 확실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느님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매사에 하느님을 찾고 발견하려는 일에는 여전히 불확실성의 영역이 남아 있습니다. 그분은 거기에 계셔야 합니다. 누군가가 하느님을 확실히 만났다고 말하면서도 불확실성의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는다면,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 어떤 사람이 모든 질문에 답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지 않는다는 표지입니다”(『나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안토니오 스파다로와의 대담).
인간은 하느님의 신비를 완전히 알 수 없기에, 너무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분의 뜻을 알고자 노력할 뿐이고, 그 노력으로 숨겨진 의미를 아주 조금씩 깨달을 수 있을 뿐입니다. 세상의 모순과 고통, 예기하지 못한 사고, 소중한 이와 헤어짐 등 어떻게 이 모든 것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듯한 이유를 붙일 수야 있겠지만, 사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인지 자신의 생각인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유한한 인간은 믿음을 가지고 겸손하게 그분의 뜻을 찾는 여정을 걸어갈 뿐입니다.
제1독서의 욥은 하느님의 뜻을 찾아 모험에 나섰습니다. 그의 눈으로는 무고한 의인의 고통, 아무 이유를 찾을 수 없는 불행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는 그저 하느님을 만나 자신의 고통을 토로하고, 이 고통의 이유와 의미를 묻고자 합니다. 이에 대하여 결국 하느님께서 응답하십니다.
하느님의 답변은 인간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분의 크심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그분의 크심은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고통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인간 사고의 틀 안에 가두기보다,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그분의 크심을 인정하고, 불확실성 안에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나아가는 것이 우리 신앙인의 올바른 태도일 것입니다. 그럴 때 알 수 없는 고통의 신비를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