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6월 30일 일요일
[녹] 연중 제13주일 (교황 주일)
한국 교회는 해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6월 29일)이나 이날과 가까운 주일을 교황 주일로 지낸다. 이날 교회는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인 교황이 전 세계 교회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주님의 도움을 청한다. 교황 주일에는 교황의 사목 활동을 돕고자 특별 헌금을 한다.
오늘 전례
오늘은 연중 제13주일이며 교황 주일입니다. 생명을 창조하시고 우리가 그 생명을 온전히 누리기를 바라시는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이 미사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 곁으로 부르십니다. 우리의 아픔을 어루만지시는 하느님의 초대에 감사드리며,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님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입당송 시편 47(46),2
본기도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다.>1,13-15; 2,23-24
화답송시편 30(29),2와 4.5-6.11-12ㄱ과 13ㄴ(◎ 2ㄱㄴ 참조)
제2독서
<여러분이 누리는 풍요가 가난한 형제들의 궁핍을 채워 줄 것입니다.>8,7.9.13-15
복음 환호송2티모 1,10 참조
복음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5,21-43
5,21-24.35ㄴ-43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목자이신 주님, 주님의 종 프란치스코 교황의 몸과 마음을 보살펴 주시어, 주님 백성의 신앙을 굳건히 하고, 일치의 토대가 되어 온 교회를 하느님 나라로 이끄는 데 앞장서게 하소서.
2. 한반도의 진정한 화해와 용서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참평화를 바라시는 주님, 남북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할 수 있는 화해와 용서의 마음을 내려 주시어, 지금 여기 삶의 자리에서 저희를 통하여 한반도가 화해와 용서의 장이 되게 하소서.
3. 고통받는 이웃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온유하신 주님,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굽어살피시고 위로하시어, 그들이 주님께서 주시는 안식을 누리고 이웃과 희로애락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
4. 지역 사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비하신 주님, 지역 사회의 어려운 이들을 보살펴 주시어, 그들의 건강을 지켜 주시고, 저희가 복음을 실천하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나눌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예물 기도
감사송
<연중 주일 감사송 2 : 구원의 신비>영성체송 시편 103(102),1
요한 17,20-21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어린 딸을 살리려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리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우리가 그 모습과 그분의 사랑에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의 도움을 청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오늘 제2독서는 가난한 이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그리스도를 묵상하도록 초대합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과 같은 본성을 지니시며 누구보다도 부유한 분이셨지만,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시어 당신 자신을 비우시고 가난하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취하십니다. 그리고 그 가난을 넘어 십자가 죽음이라는 비천함까지 껴안으십니다(필리 2,6-8 참조).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께서는 사랑하시는 인간을 위하여 당신의 모든 것을 내놓으시고 우리 곁으로 다가오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리스도의 거룩함은 고고하게 홀로 계심에서 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랑하시는 인간과 같아지시는 거룩함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가난함으로 우리의 가난한 삶을 살아가시고, 그 안에서 슬픔과 고통을 함께 겪으십니다. 이달 내내 우리가 기억한 그리스도의 성심은 크신 사랑으로 우리의 고통에 함께하시며 마음이 찢어지도록 슬퍼하시고 아파하시는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입니다. 인간의 고통을 나누시는 그 가난으로, 우리는 그분과 함께 부유해지고 충만해집니다.
바오로 사도는 ‘가난한 이를 위해서 가난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속성을 근거로 그리스도인에게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라는 윤리적 실천을 요구합니다. 그리스도의 이 모습은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여 줍니다.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입니다. 가난한 이와 분리되어 그들에게 작은 시혜를 베푸는 것으로 만족하는 ‘가난한 이를 도와주는 부자 교회’가 아닌 가난한 이들과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사랑으로 동화되는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입니다(프란치스코, 「복음의 기쁨」, 198항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