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8월 23일 금요일
[녹]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또는
[백] 리마의 성녀 로사 동정
입당송 시편 84(83),10-11 참조
본기도
제1독서
<너희 마른 뼈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온 이스라엘 집안인 너희를 무덤에서 끌어내겠다.>37,1-14
화답송시편 107(106),2-3.4-5.6-7.8-9(◎ 1 참조)
복음 환호송시편 25(24),4.5 참조
복음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22,34-40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130(129),7
요한 6,51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심판을 선고하던 에제키엘이, 예루살렘이 함락된 뒤에는 구원을 선포합니다. 심판 선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던 자들이 막상 멸망하고 나니 절망에 빠지는데, 심판을 선고하였던 예언자는 오히려 희망을 선포합니다.
희망이라는 것, 쉽지 않은 덕목입니다. 문명이 발달하였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전보다 더 간절히 희망을 이야기합니까? 어떻게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요?
에제키엘에게서 분명히 볼 수 있는 것은, 그가 선포하는 희망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마른 뼈들이 살아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서, 에제키엘은 판단하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아십니다”(에제 37,3). 다른 많은 사람이 그러하였듯이 에제키엘이 보기에도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것은 하느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에제키엘은 하느님을 믿고, 그분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 합니다. 마른 뼈들에게 살아나리라고 예언하라는 것은,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여기던 이스라엘에게 희망을 선포하라는 것과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에제키엘은 그 말씀을 믿고 선포합니다.
그가 부르심을 받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하느님께서는 심판을 선고하라고 에제키엘을 보내시면서, 이스라엘이 완고하여 듣지 않으리라고 하시며 그들이 듣든 듣지 않든 선포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듣든, 또는 그들이 반항의 집안이어서 듣지 않든, 자기들 가운데에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만은 알게 될 것이다”(2,5). 모두 절망하고 있을 때 희망을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가 예언자이기 때문이고, 그가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희망은 오직 하느님에게서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