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9월 11일 수요일
[녹]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입당송 시편 119(118),137.124
본기도
제1독서
<그대는 아내에게 매여 있습니까? 갈라서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대는 아내와 갈라졌습니까? 아내를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7,25-31
화답송시편 45(44),11-12.14-15.16-17(◎ 11ㄱ)
복음 환호송루카 6,23 참조
복음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6,20-26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42(41),2-3
요한 8,12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1코린 7,31).
지난해에 아버지의 임종을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내세에 대한 희망 같은 것은 전혀 생각도 하지 않은 아버지였지만, 그렇다고 현세에 집착하거나 죽음을 아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마지막 말씀은 의사들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고, 인사도 없이 그냥 가셨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에서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신앙이 없는 삶에 대해서가 아니라, 신앙이 있다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세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삶에 대하여 아무 미련 없이 떠나가는데, 영원한 생명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현세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하고, 자기 몸을 끔찍이 아끼며, 아주 사소한 예를 들면 선풍기는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두려 하는 우리의 모습을 설명할 수 없어 보였습니다. 이 세상의 형체는 사라지고 있음을 과연 믿는 것일까요? 영원한 생명을 믿는 것일까요?
바오로 사도는 신자들에게, 마지막 날을 기다리는 삶을 살라고 말합니다. 현세의 삶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고, 영원한 삶을 바라며 살라고 말합니다. 복음의 불행 선언도 같은 맥락입니다. 부유한 사람들, 배부른 사람들, 지금 웃는 사람들이 불행한 것은 그 삶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삶 속 자신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마치 현세가 전부인 양, 이 세상에서 부유하고 배부르고 웃는 삶만을 선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