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2일 토요일

[녹]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또는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입당송 에스 4,17②-③ 참조

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권능 안에 있어, 당신 뜻을 거스를 자 없나이다. 당신이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하늘 아래 모든 것을 만드셨으니, 당신은 만물의 주님이시옵니다.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 공로와 소망보다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양심의 가책을 받은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감히 청하지 못하는 은혜도 내려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여러분은 모두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
3,22-29
형제 여러분, 22 성경은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이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23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 아래 갇혀,
믿음이 계시될 때까지 율법의 감시를 받아 왔습니다.
24 그리하여 율법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도록,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감시자 노릇을 하였습니다.
25 그러나 믿음이 온 뒤로 우리는 더 이상 감시자 아래 있지 않습니다.
26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27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28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29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다면,
여러분이야말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약속에 따른 상속자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시편 105(104),2-3.4-5.6-7(◎ 8ㄴ 참조)

◎ 주님은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셨네.
○ 그분께 노래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그 모든 기적 이야기하여라. 거룩하신 그 이름 자랑하여라.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
○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 그분이 이루신 기적과 이적을, 그분 입으로 내리신 판결을 기억하여라. ◎
○ 그분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들아, 그분이 뽑으신 야곱의 자손들아! 그분은 주 우리 하느님, 그분의 판결이 온 세상에 미치네. ◎

복음 환호송루카 11,28 참조

◎ 알렐루야.
○ 하느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은 행복하여라.
◎ 알렐루야.

복음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는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7-28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7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2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 기도 

주님, 주님께서 세우신 이 제사를 받아들이시어
저희가 정성을 다하여 마땅히 거행하는 이 거룩한 신비로
저희를 거룩하게 하시고 주님의 구원을 이루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애가 3,25

당신을 바라는 이에게, 당신을 찾는 영혼에게 주님은 좋으신 분.
<또는>
1코린 10,17 참조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이어도 한 몸이네. 우리 모두 같은 빵과 같은 잔을 함께 나누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성체를 받아 모신 저희가 이 성사의 힘으로 자라나
마침내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바오로 사도는 믿음이 오기 전에 율법이 “감시자” 노릇을 하였다고 말합니다(갈라 3,24 참조). 『200주년 신약 성서』에서는 같은 단어를 “후견인”으로 옮깁니다. ‘파이다고고스’라는 이 그리스 말 낱말은 어원적으로는 ‘파이스’ 곧 아이에게, ‘아고고스’ 곧 길을 안내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상류층의 사람들이 믿을 만한 종에게 아이의 생활을 돌보고 가르치는 일을 맡겼고, 그 일을 하던 사람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이들은 교사 또는 스승과는 달랐으며, 어느 정도 나이가 될 때까지 바른 생활을 가르치며 훈육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어린 아들은 종보다 신분이 높지만 감시자인 종에게 교육을 받습니다. 성인이 되었을 때 자유인으로서 올바로 살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가 성인이 되었을 때는 종인 감시자에게 매여 있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이 있었던 것도, 우리에게 율법이 절대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3,24) 준비가 필요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 나온 낱말들로 표현하여 본다면, 율법은 한편으로는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여 주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약속”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에서 해방되어야 하는지를 알게 하면서 거기에서 벗어나게 되리라는 약속도 주었던 것입니다.
어린아이였던 우리가 성인이 되었을 때, 참으로 성숙해졌다면 우리에게는 감시자가 필요하지 않아야 합니다. 제멋대로가 아니라, 감시자가 없어도 자유를 사용하여 사랑으로 서로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5,13 참조). 거기에 이르지 못하였다면 그것은 아직도 감시가 필요한 미성년자라는 뜻일 것입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