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2월 02일 일요일
[백] 주님 봉헌 축일 (축성 생활의 날)
교회는 성탄 다음 40일째 되는 날 곧 2월 2일을 주님 성탄과 주님 공현을 마무리하는 주님 봉헌 축일로 지낸다. 이 축일은 성모님께서 모세의 율법대로 정결례를 치르시고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하느님께 봉헌하신 것을 기념한다. 예루살렘에서는 386년부터 이 축일을 지냈으며, 450년에는 초 봉헌 행렬이 여기에 덧붙여졌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이날을 ‘축성 생활의 날’로 제정하시어, 복음 권고의 서원으로 주님께 축성받아 자신을 봉헌한 축성 생활자들을 위한 날로 삼으셨다. 이에 따라 교회는 해마다 맞이하는 이 축성 생활의 날에 축성 생활 성소를 위하여 특별히 기도하고, 축성 생활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권고한다.
한편 한국 교회는 ‘Vita Consecrata’를 ‘축성 생활’로 옮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봉헌 생활의 날’을 ‘축성 생활의 날’로 바꾸었다(주교회의 상임위원회 2019년 12월 2일 회의).
오늘 전례
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요셉 성인과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헌하시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또한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읍시다. 특별히 ‘한국 교회 축성 생활의 해’(2024년 11월 21일-2025년 10월 28일)를 맞아 교회 안에서 각별한 봉헌의 삶을 선택한 축성 생활자들을 위하여 이 미사 중에 함께 기도합시다.
초 축복과 행렬
입당송 시편 48(47),10-11
본기도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3,1-4
화답송시편 24(23),7.8.9.10(◎ 10ㄴㄷ)
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2,14-18
복음 환호송루카 2,32 참조
복음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2,22-40
2,22-32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기쁨이신 주님, 주님의 교회를 보살펴 주시어, 지상의 사명에 봉사하도록 부름받고 저마다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2.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인자하신 주님, 기후 위기와 전쟁으로 불안한 이 세상을 굽어보시어, 주님의 정의가 실현되고 인간의 생명이 존중받으며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3. 태아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 현실의 어려움에서 부부들을 보호하시어, 태아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생명을 위협하는 모든 것을 멀리하도록 이끌어 주소서.
4. 교구(대리구, 수도회)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의 주님, 주님께 향하는 저희 공동체에 강복하시어,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본받고 증언하며 실천하게 하소서.
예물 기도
감사송
<주님의 축일과 신비 감사송 7 : 주님 봉헌의 신비(2월 2일)>영성체송 루카 2,30-31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께서는 아기 예수님을 주님께 봉헌하러 성전에 가셨다가, 평생 주님을 섬겨 온 시메온과 한나 예언자를 만나십니다. 시메온은 예수님께서 걸으실 길을 예언하며, 성모님의 영혼이 예리한 칼에 찔리듯 고통스러우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예수님의 길은 축복의 길이지만, 수고와 고난도 함께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오늘 교회는 예수님의 부모가 율법에 따라 성전에서 아기를 주님께 바친 일을 기념합니다.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히브 2,17) 하였던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백성의 다른 맏아들들처럼 부모의 손으로 성전에 바쳐지십니다. 아기 스스로 자신을 바친 것이 아니라 부모가 바칩니다. 실제로 그리스 말 원문은 ‘봉헌’과는 조금 다른 ‘나타내 보이다, 출현하다, 소개하다’(present)라는 뜻을 가집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오늘 복음을, 드디어 오신 구세주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대표하는 두 예언자를 통하여 당신 백성을 처음 만나는 자리라고 하십니다. 일종의 상견례인 셈이지요. 제1독서에서 구세주께서 “자기 성전으로 오[시]리라.”(3,1)라고 한 말라키 예언자의 말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곧 아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뒤 처음으로 성전에서 아버지 앞에, 그리고 백성 앞에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축성 생활’(vita consecrata)의 날을 꽤 오랫동안 ‘봉헌 생활’의 날로 불러왔기에 축성 생활자들이 주님께서 성전에 바쳐지신 것과 같은 의미로 봉헌된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5년 전 이를 ‘축성 생활’로 번역하여 쓰기로 한 주교회의의 결정은 이런 혼란을 바로잡고 축성 생활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사실 ‘축성’은 오늘 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봉헌’과는 쓰인 낱말과 그 뜻이 다릅니다. ‘축성 생활’은 “서원을 통하여 …… 세 가지 복음적 권고의 의무를 받아들이는” 삶, 곧 “복음적 권고의 서원으로 이루어지는 신분”(교회 헌장, 44항)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수도자를 포함하여 복음 권고를 서약하는 모든 이가 축성 생활자입니다. 올해 ‘한국 교회 축성 생활의 해’를 지내면서 축성 생활 성소를 위하여 더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