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04일 토요일
[녹]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또는
[백] 포르투갈의 성녀 엘리사벳 또는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입당송 시편 47(46),2
본기도
제1독서
<나는 내 백성의 운명을 되돌려 그들을 저희 땅에 심어 주리라.>9,11-15
화답송시편 85(84),9.11-12.13-14(◎ 9ㄴㄷ 참조)
복음 환호송요한 10,27 참조
복음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9,14-17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103(102),1
요한 17,20-21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 본성에 근원적 결핍이 새겨져 있어 소유에 대한 욕망과 집착에 시달리기 마련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간을 ‘슬픈 짐승’으로 보는 견해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무엇을 ‘더’ 가지기를 바랄수록, 누군가가 내 곁에 ‘더’ 오래 머물러 주기를 바랄수록 우리의 슬픔은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과연 그런 존재이기만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본성에는 슬픔에 앞서 기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죄 이전에 인간은 하느님의 복을 충만히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맺은 관계가 단절되면서 깊은 슬픔이 인간을 짓누르기 시작하였고, 이를 회복하고자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마태 9,15)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것은 기쁨입니다. 그분의 은총으로 하느님과 관계가 다시 이어지고, 참행복을 충만히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과 함께 있는 지금 단식할 이유가 없습니다. 본디 단식은 무엇을 자꾸만 더 채우려는 소유와 집착의 고리를 끊어 내고,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판하며 자기들의 단식 행위가 정당함을 드러내는 데 급급합니다. 그들은 규정을 철저히 지켰지만, 단식이 향해야 할 본질에서는 한참 떨어져 있었습니다.
살다 보면 우리는 슬픔에 자주 짓눌립니다. 이런 우리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그분과 함께할 때 우리는 참된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지난날에 대한 집착과 낡은 관습적 사고를 벗어던지고, 우리 마음의 새 부대를 마련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