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29일 수요일
[백]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마르타와 마리아와 라자로는 형제 사이로, 예루살렘과 가까운 베타니아에서 살았다. 그들은 베타니아의 자기 집에 오신 예수님을 열렬히 환대하여, 마르타는 정성껏 시중을 들고 마리아는 그분의 말씀을 경건하게 들었다. 그들을 특별히 사랑하신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셨고, 그를 죽음에서 부활시키셨다.
본디 7월 29일은 ‘성녀 마르타 기념일’이었으나, 2021년부터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로 변경되었다(교황청 경신성사성, 2021년 1월 26일 교령 참조).
<전례문은 주교회의 홈페이지 참조(말씀 마당, 전례문)>
입당송 루카 10,38
본기도
복된 마르타의 집에서 귀한 대접을 받으셨으니
저희도 형제들 안에서 성자를 섬기며
마리아와 함께 성자의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제1독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4,7-16
화답송시편 34(33),2-3.4-5.6-7.8-9.10-11(◎ 2ㄱ 또는 9ㄱ)
복음 환호송요한 8,12 참조
복음
<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11,19-27
10,38-42
예물 기도
영성체송 요한 11,27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라자로가 죽었습니다. 그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오빠였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요한 11,5 참조). 요한 복음사가는 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표현하고자 그리스 말 ‘아가파오’를 씁니다. 이는 요한이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를 가리킬 때 쓴 낱말로(13,23; 19,26 참조) 예수님과 이들의 사이가 인간적 우정을 넘어선 인격적이고 영적인 사랑의 관계였음을 드러냅니다.
이탈리아의 신학자이기도 한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는 요한 1서 4장을 풀이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좀 더 인격적으로 만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일반적으로 두 사람이 서로를 알게 되고 관계를 가짐으로써, 서로 공감하고 서로에게 호의를 가지며 서로를 기꺼이 도와주게 됩니다. 그럼에도 이 두 사람 사이에는 항상 벽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그 벽은 다음과 같이 표현됩니다. ‘나는 그 사람이 아니고, 그 사람은 나와 달라.’ …… 하지만 인간이 진심 어린 사랑으로 다른 사람에게 돌아서자마자, 그들 사이에 있는 벽은 희미해지며, 벽이 희미해질수록, 진심은 더욱 순수해집니다”(『하느님의 진리와 사랑』, 197면).
마르타는 라자로의 죽음에 슬퍼하였지만 예수님을 만나 믿음을 고백합니다. 그는 인간이 가장 무력함을 느끼게 되는 죽음이라는 벽을 마주하고서도 절망하지 않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며 희망을 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라자로의 무덤을 막고 있던 죽음의 벽을 허무시고 그를 다시 생명으로 걸어 나오게 하십니다. 이것은 오직 사랑으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사랑은 죽음 앞에 무력하지 않습니다. 진심 어린 사랑은 우리 안의 벽을 허물고 우리를 다시 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