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1월 26일 일요일
[녹] 연중 제3주일 (하느님의 말씀 주일, 해외 원조 주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연중 제3주일을 ‘하느님의 말씀 주일’로 선언하였다(2019년 9월 30일). 하느님 백성이 성경을 더욱더 경건하고 친숙하게 대하고, 하느님 말씀의 거행과 성찰과 전파를 위하여 이날을 봉헌하며 장엄하게 지내기를 권고한다.
또한 한국 교회는 해마다 1월 마지막 주일을 ‘해외 원조 주일’로 지내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2003년 추계 정기 총회에서 해외 원조 사업에 대한 올바른 홍보와 신자들의 의식 강화를 도모하고자 ‘해외 원조 주일’을 정하였다. 오늘 특별 헌금은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지의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원조로 쓰인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연중 제3주일을 ‘하느님의 말씀 주일’로 선언하시며(2019년 9월 30일), 하느님 백성이 성경을 더욱더 경건하고 친숙하게 대하고, 하느님 말씀의 거행과 성찰과 전파를 위하여 이날을 봉헌하며 장엄하게 지내기를 권고하셨다.
해마다 1월 마지막 주일은 전 세계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나눔을 실천하는 ‘해외 원조 주일’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1992년 추계 정기 총회에서 전 세계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촉구하고자 이 주일의 2차 헌금을 해외 원조 기금으로 사용하도록 결정하였다.
오늘 전례
입당송 시편 96(95),1.6
본기도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말씀의 초대
제1독서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8,23ㄷ―9,3
화답송시편 27(26),1.4.13-14(◎ 1ㄱ)
제2독서
<모두 합심하여 분열이 일어나지 않게 하십시오.>1,10-13.17
복음 환호송마태 4,23 참조
복음
<예수님께서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셨다.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4,12-23
4,12-17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 주님 말씀에서 힘을 얻은 교회가 용서와 사랑의 밑거름이 되고, 길을 잃고 헤매는 이들에게 주님의 빛을 비추게 하소서.
2. 공직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인도자이신 주님, 공직에 몸담고 있는 이들에게 지혜와 사랑의 은총을 주시어, 그들이 자신의 사명을 올바로 깨닫고, 국민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3. 해외 원조 주일을 맞아, 가난한 나라의 국민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온유하신 주님, 굶주리거나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살펴 주시어, 그들이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게 하시고, 저희는 가진 것을 나누며 공동선에 이바지하게 하소서.
4. 지역 사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이신 주님, 지역 사회의 모든 이가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배려하게 하시고, 저희는 사회 경제적으로 소외된 이들을 찾아 따뜻한 정을 나누며 주님의 사랑을 전하게 하소서.
예물 기도
감사송
<연중 주일 감사송 1 : 파스카 신비와 하느님 백성>영성체송 시편 34(33),6 참조
요한 8,12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예수님 시대에 갈릴래아는 게으른 사람들이 모여 불법을 저지르는 곳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가난한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어서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이 너무나 팍팍한 곳이었기에 남쪽 유다 사람들은 갈릴래아를 멸시하였습니다. 먹고살기 바쁘면, 품위 있고 고상한 시간을 즐기는 것은 사치에 가까운 것이지요. 요샛말로 ‘누구는 편안히, 즐겁게 살고 싶지 않겠냐?’는 푸념이 갈릴래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듯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나라를 선포하신 곳은 바로 갈릴래아였고, 공생활의 대부분도 갈릴래아에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선택은 가난한 곳이었고, 예수님께서 만나신 이들은 대개가 아프고 소외된 사람이었습니다.
제자들도 그러하였습니다. 내세울 만한 능력도 기술도 명예도 없는 그들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인류 구원의 역사를 써 내려가시기 시작하셨지요. 개천에서 용 나듯 또 다른 성공 사례로 예수님의 공생활을 언급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예수님께서는 부유한 도시나 성공한 이들의 생활 방식에는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예루살렘이나 갈릴래아의 큰 도시, 예를 들어 세포리스와 같은 큰 도시에서 벌어지는 삶의 구체적 언급은 복음서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읽고 접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과 사회적 약자들의 만남과 그 속에서 펼쳐지는 구원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세상의 부자와 성공한 사람을 무시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각자의 삶의 처지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를 선택하신 이유는 가진 자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가지지 못한 이들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고, 그 연민으로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사람답게 살기 바라시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삶의 처지를 살피는 것에 지치지 말아야겠습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