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2월 03일 월요일
[녹] 연중 제4주간 월요일 또는
[홍] 성 블라시오 주교 순교자 또는
[백] 성 안스가리오 주교
입당송 시편 106(105),47
본기도
말씀의 초대
제1독서
<압살롬에게서 달아납시다.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니 저주하게 내버려 두시오.>15,13-14.30; 16,5-13ㄱ
화답송시편 3,2-3.4-5.6-8ㄱㄴ(◎ 8ㄱㄴ 참조)
복음 환호송루카 7,16
복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5,1-20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31(30),17-18 참조
마태 5,3.5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예수님과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마주칩니다. 이 사람은 한마디로 죽음의 세력입니다. 이는 그가 무덤에서 살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습니다. 본디 무덤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죽은 이들이 머무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이 사람은 사람들의 삶을 자꾸 죽음의 공포로 몰고 갔습니다. 그를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지만, 이마저도 부수어 버리고,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며 돌로 제 몸을 쳤습니다.
이렇게 게라사 지방은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진 곳이 되었고, 하느님의 영을 받아야 할 사람은 족쇄와 쇠사슬로도 다스리지 못하는 괴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생명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죽음의 세력인 더러운 영에게 이르십니다.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이어서 부정한 짐승으로 여기던 돼지에게 도망치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그제야 게라사 지방은 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나 생명의 빛을 향한 첫걸음을 떼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게라사 주민들은 예수님께 자기들에게서 떠나 달라고 간청합니다. 아무리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셨다고 하여도, 이 일 때문에 생계에 가장 필요한 돼지 이천 마리가량이 죽어 속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죽음의 그늘에서 해방된 사실보다도 당장 먹고살 문제에 마음이 쓰일 뿐이었습니다.
생계와 생명은 비슷하면서도 큰 차이가 있는 낱말입니다. 생계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을 지나치게 염려하고 걱정한다면 참생명을 알아보지 못하고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생계와 생명을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한재호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