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2월 07일 금요일
[녹] 연중 제4주간 금요일
입당송 시편 106(105),47
본기도
말씀의 초대
제1독서
<다윗은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을 사랑하였다.>47,2-11
화답송시편 18(17),31.47과 50.51(◎ 47ㄷ 참조)
복음 환호송루카 8,15 참조
복음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6,14-29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31(30),17-18 참조
마태 5,3.5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헤로데의 폭력으로 세례자 요한이 죽게 된 이야기입니다. 헤로데 임금이 동생의 아내 곧 제수인 헤로디아와 혼인하자, 세례자 요한이 이를 두고 여러 차례 잘못된 행실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헤로데는 그 말에 불편해하면서도 세례자 요한이 군중에게 많은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생일잔치에서 적절한 기회가 닿아 세례자 요한을 죽이고 맙니다.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항상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을 하기 마련입니다. 헤로데에게도 그럴 만한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대중의 지지를 받는 세례자 요한이 자신을 자꾸 비방하고 나서면 국가 분열이 일어나 안정된 정치를 할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항변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국가의 요직에 있는 사람들이 참석한 생일잔치에서 약속을 어기기라도 하면, 자신의 권위가 실추되어 국정을 운영하는 데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이유가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폭력을 당한 사람은 신음 소리를 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그들의 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의 목이 잘릴 때 그가 외쳤던 비명도 하느님께서는 가슴 아프게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모른 체하시지 않으십니다. 이를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의 폭력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폭행을 당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셨고, 그 폭력의 악을 폭로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가 폭력을 행사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명시적으로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헤로데가 되는 것입니다.
(한재호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