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2월 20일 목요일
[녹] 연중 제6주간 목요일
입당송 시편 31(30),3-4 참조
본기도
말씀의 초대
사회적 지위가 어떠하든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신앙인의 참된 자세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 부활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라고 밝히시자 제자들은 큰 충격에 빠진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고르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겼습니다.>2,1-9
화답송시편 34(33),2-3.4-5.6-7(◎ 7ㄱ)
복음 환호송요한 6,63.68 참조
복음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8,27-33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78(77),29-30 참조
요한 3,16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우연한 기회로 신학교 동기 신부들에게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가장 보람된 순간, 가장 공허한 순간, 사제가 되어서 좋은 점과 어려운 점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흥미로웠습니다. 자기 자신이 사제라는 사실을 느끼고 이에 대한 보람과 기쁨을 느끼는 것도 성사나 말씀 선포와 연관된 것이고, 어려움이나 공허함을 느끼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성사나 말씀 선포와 연관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한 가지 사건 안에 행복과 고통이 공존하고 있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언젠가 국제적인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이 텔레비전에서 강의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에게 회사 생활이 어떠냐고 물으면 “아주 좋아요. 저는 즐겁게 일해요.”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되물었답니다. “힘들지 않은가 보지?”
그러나 사실 이와 같은 되물음은 잘못된 것입니다. 즐거운 것이 곧 힘들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힘들어도 그 안에 즐거움이 충분히 있을 수 있고, 즐거움 안에도 힘든 부분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한마디로 고통 안에 기쁨이 있고, 기쁨 안에 고통이 있는 것이 우리 삶의 이치입니다. 그림자 없는 빛, 밤이 없는 낮, 오르막이 없는 내리막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가 “사탄”이라고 꾸중을 들은 이유는 이러한 삶의 이치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광의 그리스도는 고백하지만 고난받으시는 그리스도는 받아들이지 않는 그의 생각은 삶의 이치에도, 하느님의 뜻에도, 구원의 신비에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다가오는 고난과 역경을 피하려고만 하고 오직 평화와 기쁨만을 추구하려는 것은 아닌지요?
(한재호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