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5월 10일 일요일
[백] 부활 제5주일
오늘 전례
▦오늘은 부활 제5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당신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올바른 길을 보여 주시고 무엇이 참된 삶인지를 깨닫게 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길을 성실히 걸어갈 때 우리는 진리를 깨닫고 생명과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입당송 시편 98(97),1-2 참조
본기도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말씀의 초대
하느님의 말씀이 더욱 자라나면서 예루살렘 공동체가 점점 성장한다(제1독서). 신앙인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 마음에 드는 제물을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어야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통해서만 아버지께 갈 수 있으며, 당신께서 아버지 안에 계시고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계시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았다.>6,1-7
화답송시편 33(32),1-2.4-5.18-19(◎ 22 참조)
제2독서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입니다.>2,4-9
복음 환호송요한 14,6 참조
복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1-12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은총의 샘이신 주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안에 계시니,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으로 저희가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도록 보살펴 주소서.
2. 사회 정의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의로우신 주님, 저희 생각과 말과 행동을 이끌어 주시어, 자신의 일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부정부패의 유혹을 물리치고,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는 데 한 몫을 다하게 하소서.
3. 부모님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이신 주님, 언제나 자식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부모들을 위하여 기도하오니, 그들이 늘 건강하고 평안하며, 자녀들과 함께 주님을 찬미하며 기쁨이 넘치게 하소서.
4. 교구(대리구, 수도회)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은총의 주님, 저희 교구(대리구, 수도회) 공동체의 모든 이를 보살펴 주시어, 그리스도를 본받고, 저마다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여 세상에 그리스도의 빛을 전파하게 하소서.
예물 기도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영성체송 요한 15,1.5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당신께서 하나이심을 선언하십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하느님은 늘 무섭고 두려운 분이었습니다. 사랑과 자비의 주님보다 심판과 벌을 내리시는 하느님을 먼저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도 신앙생활을 두렵고 힘들게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께 믿음의 깨달음을 주십사고 청해야겠습니다.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어떻게 …….’ ‘어떻게 …….’ 토마스는 ‘어떻게’에 묶여 있습니다. 토마스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 실은 예수님 그분 자체입니다. ‘어떻게’는 토마스가 아니라 예수님의 일입니다.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어떻게’를 찾아 나서는 것은, 지도도 없이 미지를 탐험하는 일과 같습니다. 토마스와 필립보는 자기 경험과 지식의 한계 안에서 예수님을 이해하고자 합니다.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실은 자신을 개방하지 못하는 제자들의 한계 때문입니다.
요한 복음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마디가 ‘머물다’입니다. 함께 머무는 것은 경험과 이해의 사전 지식이 필요한 일이 아닙니다. 말 못하는 강아지나 고양이와도 함께 머물 수 있는 우리 사람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함께 머물기가 그리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이 자문해 봅니다. 말이 통하고 뜻이 통하는 것이 가능한 사람 사이에,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 통하지 못하는 갈등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뼈저리게 반성합니다.
‘너무 믿고, 너무 의지해서, 너무 미워할 수 있다.’라는 말은 신앙생활 안에서도 되짚어 보아야 할 말입니다. 예수님을 너무 믿고, 너무 의지해서 함께하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자신이 꿈꾸는 예수님, 자신이 갈망하는 예수님이라는 우상을 부여잡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말을 다 들어주신다는 믿음은 예수님께서 이런 죄인 안에서도 자유로이 당신의 뜻을 온전히 펼치실 수 있을 때 터져 나오는 감사와 감탄의 행위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고작 우리의 편협한 뜻을 이루시려고 육화하시고 우리와 함께 머무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자유로우실 수 있도록 예수님 앞에서 조용히 침묵하는 시간을 가져 보아야겠습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