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5월 11일 월요일
[백] 부활 제5주간 월요일
입당송
본기도
말씀의 초대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자신들을 신처럼 대접하려는 리스트라 사람들을 소리 질러 말린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당신께서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는 복음을 전하여 여러분이 헛된 것들을 버리고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려는 것입니다.>14,5-18
화답송시편 115(113 하),1-2.3-4.15-16(◎ 1ㄱㄴ 참조)
복음 환호송요한 14,26
복음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14,21-26
예물 기도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영성체송 요한 14,27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사랑과 계명은 하나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를 떠올려 봅니다. 자신은 아파도 상대가 건강하기를, 자신은 슬퍼도 상대가 웃기를 바라는 일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상대를 위하여 더 움직이고, 더 살피고, 더 챙기게 됩니다. 사랑은 행동으로 드러나고, 사랑은 그렇게 애틋한 습관으로 서로에게 남습니다.
계명은 지켜야 할 의무 규정이 아니라 사랑으로 일구어진 습관입니다. 거창한 이벤트를 준비해서 사랑을 일구어 가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의 습관적 체험 안에서 사랑은 더욱 단단해집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들이 그분의 말씀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노력을 통한 자기 계발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삶의 연습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지켜 냅니다. 삶이 곧 사랑이고 사랑이 곧 계명을 지키는 일이 됩니다. 주위 환경이 달라도, 서로의 관점과 사상이 엇갈려도, 어쨌든 살아 내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모두들 마음 편히 살기를 바랍니다. 그럼에도 매일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가고 그 터가 때로는 우리 집일 때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또다시 하루를 살아갑니다. 참 외로운 일이지요. 참 대단한 일을 해내는 것입니다. 1세기 말엽, 기다리던 메시아께서는 오시지 않으시고, 예수님을 증언하던 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죽어 가고, 의지할 데 없어 헤매는 신앙인이 나약해졌을 때 요한 복음 저자는 예수님과, 어쨌든 살아 낼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으로 성령을 소개합니다.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오로지 의지할 수 있는 분이신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게 하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생생히 들려주시는 역할을 도맡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어쨌든 살아 내기’였습니다. 어쨌든 오늘 하루 살아 내었으면 그만큼 사랑한 것이고 계명을 지킨 것입니다. 참 고생하셨습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