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5월 18일 월요일
[백] 부활 제6주간 월요일 또는
[홍] 성 요한 1세 교황 순교자
입당송 로마 6,9 참조
본기도
말씀의 초대
바오로 일행이 필리피에서 복음을 전하였을 때 리디아가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느님 아버지께서 보내 주실 진리의 영을 보호자로 약속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는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16,11-15
화답송시편 149,1ㄴㄷ-2.3-4.5-6ㄱ과 9ㄴ(◎ 4ㄱ)
복음 환호송요한 15,26.27 참조
복음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15,26─16,4ㄱ
예물 기도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영성체송 요한 20,19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복음을 읽을 때 간혹 실수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예수님과 그분을 따르는 이들을 내 편으로 여기고 그렇지 않으면 무조건 반대편으로 갈라서 내 편, 네 편을 갈라서 사고하는 습관입니다. 90년 무렵 회당에서 그리스도인을 쫓아낸 유다 사회는 하느님을 저버리고 메시아를 포기해서 한 행동이 아닙니다. 유다 사회는 그 누구보다 하느님을 열심히 믿었고 따랐으며 찬양하였습니다.
유다 사회가 믿었던 하느님은 바빌론 유배(기원전 587-538년)를 거치며 세상 모든 것을 만드신 창조주 하느님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이의 모든 것이신 하느님을 유다 사회는 유독 자신들만의 하느님으로 포장하는 데 열심이었습니다. 모든 이의 하느님께서 우리만의 문화와 관점 아래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다른 민족과 다른 문화의 방식으로는 도저히 하느님을 따르고 찬미드릴 수 없다는 것을 강변한 것이 유다 사회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유다 회당에서 쫓겨난 것은 그들이 하느님을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유다 사회가 굳건히 간직한 하느님에 대한 유다인들만의 인식의 틀을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민족주의의 폐쇄성이 창조주 하느님의 개방성을 가로막아 버렸습니다. 내 편이 아니면 무조건 반대편이라는 폐쇄성이 세상의 다양한 관점과 개방성 속에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거부하게 됩니다.
오늘은 5·18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국립 5·18 민주 묘지에는 저와 같은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있습니다. 저는 이를 통하여 저의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타인의 아픔과 불편함, 타인의 고통과 슬픔이 곧 자신의 일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우리는 모두 창조주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고 모든 사람과 피조물에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증언하는 신앙인이니까요.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