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6월 16일 화요일
[녹]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입당송 시편 27(26),7.9 참조
본기도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 나봇의 포도밭을 차지한 아합의 죄를 물으신다. 아합이 단식하자 주님께서는 재앙을 늦추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너는 이스라엘을 죄짓게 하였다.>21,17-29
화답송시편 51(50),3-4.5-6ㄱㄴ.11과 16(◎ 3ㄱ 참조)
복음 환호송요한 13,34 참조
복음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5,43-48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27(26),4
요한 17,11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어떤 사람이 가시가 잔뜩 나 있는 나뭇가지를 손에 꽉 쥐고 있으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나 지금 손이 너무 아파.” 가시나무를 손에서 놓으면 그만일 텐데, 그 사람은 아프면 아플수록 더 힘을 주어 그 나뭇가지를 손에 꽉 쥡니다. 이 사람이 아픈 이유는 가시나무 때문일까요, 가시나무를 쥐고 있기 때문일까요?
‘네가 어떻게 나에게 그런 모진 말을 할 수 있지?’, ‘네가 내 돈을 그렇게 떼먹다니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살다 보면 이런 생각들에 사로잡혀 마음에 큰 멍이 생긴 것처럼 아픔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심지어 이런 마음의 병이 몸에도 영향을 주어 몸이 망가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상처가 되었던 그 사건은 이미 지난 일입니다. 또 우리에게 상처를 주었던 원수 같은 그 사람은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여 우리가 아픈 이유는 그 사람이나 그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 기억을 붙잡고 있는 우리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견물생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물건을 보면 그것을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좀 더 폭넓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원수의 모진 말에만 시선을 두면 아픈 마음이 생기고, 원수의 단점에만 시선을 두면 증오심이 생깁니다. 또 상처가 된 사건들만 바라보면 우울한 마음이 생기는 법입니다.
반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건네주었던 격려를 떠올리면 용기가 생기고, 미운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의 장점에 시선을 두면 존경심이 생깁니다. 또 우리 삶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바라보면 마음속에 감사함이 넘쳐흐릅니다. 요컨대 원수를 사랑하려면 나의 시선을 달리해야 합니다.
가시나무를 당장 손에서 놓는다고 아픔이 곧바로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상처를 낫게 하는 첫걸음입니다. 그 첫발을 떼고 인내하십시오. 그러다 보면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길 것입니다.
(한재호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