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8월 17일 월요일
[녹]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입당송 시편 84(83),10-11 참조
본기도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의 아내의 죽음을 예표로, 이스라엘 집안은 성전이 더럽혀져도 슬퍼하지도 울지도 못할 것임을 알려 주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에제키엘이 너희에게 예표가 되고, 그가 한 것처럼 너희도 하게 될 것이다.>24,15-24
화답송신명 32,18-19.20.21(◎ 18ㄱ 참조)
복음 환호송마태 5,3
복음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너의 재산을 팔아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19,16-22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130(129),7
요한 6,51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재산이 넉넉하고 지위가 높음을 ‘부귀’라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부귀를 누리고 싶어 합니다만, 부귀는 칼날이나 창과 같아서 조금이라도 방종하게 굴면 사람의 뼈와 살을 베고 찌릅니다. 그런데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역사책 『설원』에는 부귀에 대하여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부’는 만족할 줄 아는 데 있고 ‘귀’는 물러남을 구하는 데 있다.” 만족하고 물러날 줄 아는 지혜만 있다면 부귀를 누리는 사람들 모두 예수님을 따라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 예수님께 질문을 드린 한 젊은이가 모든 계명을 잘 지켰음에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라는 주님 말씀에 슬퍼하며 떠납니다. 사실 젊은이의 질문은 두 가지 다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하는가?’였고, 둘째는 ‘아직도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이라는 말씀을 통하여 이 두 번째 질문을 스스로 되묻고 생각하도록 하십니다. ‘내게 부족한 것이 아니라 차고 넘치는 것이 무엇일까?’로 말입니다.
가진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그 많은 무엇이 우리를 차지한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자유의 한계를 깨닫고, 우리의 욕망이 무엇인지 올바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사랑은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라는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인의 말을 인용하시면서 ‘친절한 사랑은 오로지 내어 주고 섬기는 데서 오는 기쁨을 체험하게 한다.’(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 94항 참조)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구약 성경의 시편도 이 ‘부’와 ‘귀’를 노래합니다. “누가 부자가 된다 하여도, 제집의 영광을 드높인다 하여도 불안해하지 마라. 죽을 때 그 모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으며, 그의 영광도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한다. 영화 속에 있으면서도 지각없는 사람은, 도살되는 짐승과 같다”(시편 49[48],17-18.21).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