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9월 16일 수요일
[홍]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고르넬리오 성인은 251년에 로마의 주교로 서품되었다. 그는 박해 시기에 배교한 그리스도인들을 다시 공동체에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로마의 사제 노바티아누스 이단에 맞서 투쟁하였고, 카르타고의 주교 치프리아노의 도움으로 자신의 권위를 강화하였다. 갈루스 황제가 252년 6월 다시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면서 그에게 유배형을 내렸고, 253년 6월 이탈리아 치비타베키아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신은 로마로 옮겨져 성 갈리스토 카타콤에 묻혔다.
치프리아노 성인은 210년 무렵 카르타고(현재 튀니지 일대)의 이민족 가정에서 태어났다. 246년 무렵 체칠리아노 사제의 영향으로 세례를 받고, 자신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세례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제품을 받고, 249년 카르타고의 주교가 되어 어렵고 힘든 시대에 모범적인 덕행과 저술로써 교회를 훌륭히 다스렸다.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유배당하고, 신임 총독 갈레리우스 막시무스에게 재판받다가, 258년 9월 14일 카르타고 근교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입당송
본기도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되는데,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먹보요 술꾼이라고 한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은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12,31─13,13
화답송시편 33(32),2-3.4-5.12와 22(◎ 12ㄴ 참조)
복음 환호송요한 6,63.68 참조
복음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7,31-35
예물 기도
영성체송 루카 22,28-30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이들에게 신뢰를 가지기는 어렵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삶 속에 끊임없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에 대한 판단과 식별도 그때그때 달라지고 뒤틀립니다. 고백하건대, 대개의 판단과 식별은 자신의 이익을 먼저 계산하는 이기심으로 그 순수성과 진정성이 퇴색해 가고는 합니다.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의 외침은 한결같았습니다. ‘태초부터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으로 초대하셨다. 그 구원은 모든 이가 화해와 용서 안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세상은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고, 사랑하는 가운데 하느님께서 늘 함께 계실 것이다.’라고 요약되는 복음의 가르침은 이제껏 달라진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문제는 수많은 인간들의 다양한 해석에서 비롯합니다. 몇몇 해석들은 타락하여 이단이 되었고, 몇몇 해석들은 감히 근접하기 힘든 고도의 수련으로 뻗어 갔습니다. 모든 해석은 어느 정도 제 삶의 가치관과 이해관계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대답이 신앙을 해석하는 방식으로 드러날 때가 많습니다. 좋습니다. 어떤 해석이든 각자 삶의 자리에서 고유하게 다듬어 온 것이니 좋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자신의 고유한 관점에 대한 단단한 신뢰와 사랑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기에 앞서 자신이 가꾸어 온 삶을 사랑하는 것이 먼저여야 합니다. 저 자신을 믿지 못하는 이들은 세상의 흐름에 물결치듯 흔들리며 기회주의자로 전락하고 맙니다.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하는 단순함이 필요한 것이지요.
힘의 논리와 경제 논리 앞에 자기 삶의 가치관마저 포기하는 비굴함이 세상살이의 당연한 이치로 변질되고 신앙을 지키는 것이 교조주의적 계명 몇 가지를 실천하는 것으로 축소된 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부터 회복해야 할 슬픈 시간을 살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