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9월 18일 금요일

[녹] 연중 제24주간 금요일

입당송

 집회 36,21-22 참조
주님,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소서. 당신 예언자들이 옳다는 것을 드러내시고, 당신 종과 당신 백성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본기도

 
하느님,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니
저희를 굽어보시어
저희가 하느님의 자비를 깨닫고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셨기에 죽은 이들도 되살아날 것이라며 부활을 강조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고을을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시는데, 막달레나를 비롯해 여러 여자들이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든다(복음).

제1독서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덧없을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5,12-20
형제 여러분,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이렇게 선포하는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어째서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13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14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
15 우리는 또 하느님의 거짓 증인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죽은 이들이 정말로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되살리지 않으셨을 터인데도,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되살리셨다고
우리가 하느님을 거슬러 증언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16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17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덧없고
여러분 자신은 아직도 여러분이 지은 죄 안에 있을 것입니다.
18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이들도 멸망하였을 것입니다.
19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7(16),1.6-7.8과 15(◎ 15ㄴ 참조)
◎ 주님, 저는 깨어날 때 당신 모습에 흡족하리이다.
○ 주님, 의로운 사연을 들어 주소서. 제 부르짖음을 귀여겨들으소서. 거짓 없는 입술로 드리는 제 기도에 귀 기울이소서. ◎
○ 하느님, 당신이 응답해 주시니, 제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귀 기울여 제 말씀 들어 주소서. 놀라우신 당신 자애를 베푸소서. 당신 오른쪽으로 피신하는 이들을 적에게서 구해 주소서. ◎
○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 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 뵈옵고, 깨어날 때 당신 모습에 흡족하리이다. ◎

복음 환호송

마태 11,25 참조
◎ 알렐루야.
○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예수님과 함께 있던 여자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3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도 그분과 함께 다녔다.
2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3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 기도

 
주님,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이 제물을 너그러이 받으시어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저희가 드리는 이 제사가
모든 이의 구원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36(35),8
하느님, 당신 자애가 얼마나 존귀하옵니까! 모든 사람들이 당신 날개 그늘에 피신하나이다.
<또는>
1코린 10,16 참조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어 마시는 것이며, 우리가 나누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을 함께 먹는 것이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천상 은총으로 저희 몸과 마음을 이끄시어
저희가 제 생각대로 살지 않고
그 은총의 힘으로 살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여인들’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라삐를 따라다닐 수 있는, 그래서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는 제자가 될 수 있는 자리에 ‘여인들’의 몫은 없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남녀 차별은 사회 문제였고, 오늘날 성차별에 대한 의식의 정도는 그 사회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되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은 특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자주 표현합니다. 그러한 관심은 실은 기존 사회의 질서를 깨뜨리는 것이었고 그 결과는 예수님을 십자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한국 교회의 순교자들도 루카 복음에 나타난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아 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순교자들을 존경하며 따르고자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약자들이 많고, 자신이 왜 약자인지조차 모르며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왜 점점 더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있는지, 또 갈수록 양질의 일자리보다 비정규직이 많아지고 있는지 ……. 제 자식이 비정규직이면 정규직이 되는 것에 그리 애가 타고 부유한 이들의 부정과 편법 상속에 분노하면서도, 대개는 이러한 사회 현상의 근본 원인과 개선을 고민하지는 않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버리는 문화’로 표현되는 사회 경제 논리만으로는 세상을 치유할 수 없기에, “성경의 가르침대로, 모든 사람은 회개와 참회를 통하여 더 정의롭고 연대하는 세상의 증인이자 예언자가” 되어야 하며, “복음은 이상향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희망”이라고 말씀하십니다(『돈과 권력』 추천사 참조).

복음을 읽고 묵상하면서 우리는 사회의식을 제거하는 경우가 많지요. 세상일과 신앙의 가치를 분리한 채, 마치 복음 읽기와 묵상을 먼 나라 이웃 나라 기행문쯤으로 여기는 태도는 신앙인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루카 복음에서 여인과 함께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사회의 문제아셨습니다. 차별받고 학대받는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하며 욕먹을 각오로 세상을 살아 내는 것, 그것이 복음 묵상의 열매입니다. 제발 부탁하건대, 누군가 피 흘려 이룬 신앙을 제 한 몸 평온하려는 도구로 타락시키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