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9월 24일 목요일
[녹]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입당송
본기도
말씀의 초대
코헬렛은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라며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고 말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전해 들은 헤로데 영주는 몹시 당황하며,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라며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한다(복음).
제1독서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1,2-11
화답송시편 90(89),3-4.5-6.12-13.14와 17(◎ 1)
복음 환호송요한 14,6 참조
복음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9,7-9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119(118),4-5 참조
요한 10,14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소문에 예수님께서는 예언자이셨나 봅니다. 소문에 예수님께서는 꽤나 유명하셨나 봅니다. 소문에 예수님께서는 …… 소문에 예수님께서는 …….
이천 년 동안 예수님에 관한 소문은 무성하였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삶의 처지에서 예수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때로는 거부하며 내친 결과가 예수님에 관한 무성한 소문으로 전해지고 또 전해졌겠지요. 소문을 다 믿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소문의 가치를 애써 무시할 이유도 없습니다. 어찌 되었거나 소문을 통하여 교회는 지금까지 제 모습을 유지하고 다듬어져 왔으니까요.
문제는 다양한 소문을 듣고 불안해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헤로데가 예수님을 만나 보고 싶어 한 것은 다른 뜻, 다른 권력, 다른 유명세를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도 죽인 헤로데가, 새로운 가르침을 얻어 새롭게 거듭나고자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한 것은 분명 아닙니다. 헤로데의 호기심은 권력에 대한 애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소문에 헤로데는 당황하였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잘못이었음이, 그 잘못이 드러날까 불안했을 터이지요. 헤로데의 모습이 저의 일상 모습인 것 같아 헤로데의 마음에 한참이나 머물며 이 묵상 글을 적고 있습니다.
무성한 소문과 그에 따른 다양한 해석들에도 교회는 지금껏 여유로운 의젓함으로 살아왔습니다. 잘못과 흠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잘못과 흠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오로지 예수님의 자비만을 바랐기 때문입니다. 소문이 어떻든 예수님을 어떻게 평가하든, ‘나는 예수님 앞에 솔직히 서 있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하겠지요. 오늘도 여전히 끝기도 때 저는 하루 동안 저지른 잘못으로 아파하고 용서를 빌겠지요. 다만 자비로우신 예수님께서 위로해 주시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