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05일 월요일
[녹]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입당송 에스 4,17②-③ 참조
본기도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누가 이웃이냐는 율법 교사의 물음에,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준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응답하신다(복음).
제1독서
<복음은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1,6-12
화답송시편 111(110),1ㄴㄷㄹ-2.7-8.9와 10ㄷ(◎ 5ㄴ 참조)
복음 환호송요한 13,34 참조
복음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10,25-37
예물 기도
영성체송 애가 3,25
1코린 10,17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율법 교사가 예수님과 이웃 사랑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중에 이렇게 묻습니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당시 유다인들은 이웃의 범주를 동족으로 제한하였습니다. 다만 이방인이라도 이스라엘 땅에서 살고 있다면 이웃으로 받아들였습니다(레위 19,18.34 참조).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율법 교사의 질문에는,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는 로마인과, 갈등 관계에 있는 사마리아인을 이웃의 범주에 넣지 말아야 하지 않겠냐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동족일지라도 율법을 지키지 않는 죄인들도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단죄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을 것입니다(요한 7,49 참조). 그러므로 그가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질문을 하며 대화를 이어간 것은, 그동안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친구로 지내신 것을 비판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에 직접적인 대답은 하지 않으시고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비유 끝에 율법 교사에게 되물으십니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여기서 율법 교사의 질문과 예수님의 질문을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율법 교사의 질문이 ‘이웃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예수님의 질문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사랑해야 할 이웃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묻는 말에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라도 먼저 자신이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