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3월 06일 토요일
[자] 사순 제2주간 토요일
입당송 시편 145(144),8-9
본기도
말씀의 초대
미카 예언자는, 주님께서는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방탕한 생활을 하며 재산을 허비하고 돌아온 아들을 맞아 주는 아버지의 비유를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7,14-15.18-20
화답송시편 103(102),1-2.3-4.9-10.11-12(◎ 8ㄱ)
복음 환호송루카 15,18 참조
복음
<너의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15,1-3.11ㄴ-32
예물 기도
감사송
<사순 감사송 1 : 사순 시기의 영성적 의미>영성체송 루카 15,32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백성을 위한 기도
<자유로이 바칠 수 있다.>오늘의 묵상
부모님은 어쩌면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어릴 적 학교에서 사고 치고 걱정을 한가득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부모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부모님의 생각과 다른 결정을 하여 실망시켰을 때에도 부모님은 그런 저를 지켜봐 주셨습니다. 어쩌면 무엇을 하든 어떤 선택을 하든 부모님은 늘 그러하듯 묵묵히 저를 바라봐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부모님은 자식을 기다려 주십니다. 자식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 등장하는 아버지도 아들을 그렇게 기다려 줍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재산을 요구하는 작은아들에게 아무런 꾸중이나 충고도 하지 않고, 떠나가는 아들을 바라봅니다. 떠나간 아들을 걱정하며 마음속으로 잘 지내기를 바라며 기다립니다. 그 기다림의 끝, 아들이 거지꼴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서도 아버지는 괘씸한 마음이 아닌 가엾은 마음으로 달려가 안아 줍니다.
더욱이 아버지는 큰아들도 기다려 줍니다. 큰아들은 아우와 달리 아버지를 섬기며 순종하고 최선을 다하였음에도 자기 몫으로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아 서운해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큰아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약속합니다. 서운해하고 화를 내는 큰아들을 이해합니다.
아버지와 두 아들의 차이는 기다림입니다. 순종과 불순종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버지와 함께 있는가, 있지 않은가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아들들은 기다리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익과 생각에만 집중하여 아버지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고민하지도 않고, 기다려 주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언제나 기다립니다. 자비로움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나와 맞지 않고 내가 이해할 수도 없지만, 조금만 기다려 보는 지혜를 가질 때 우리는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처럼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