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6월 17일 목요일
[녹]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입당송 시편 27(26),7.9 참조
본기도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어떠한 경우에도 신자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자제하였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기도할 때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라고 하시며,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하느님의 복음을 대가 없이 여러분에게 전해 주었습니다.>11,1-11
화답송시편 111(110),1ㄴㄷㄹ-2.3-4.7-8(◎ 7ㄱ 참조)
복음 환호송로마 8,15 참조
복음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6,7-15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27(26),4
요한 17,11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주님의 기도’가 오늘 복음 말씀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이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하느님을 우리가 ‘아버지’로 만나게 되는 가슴 뛰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나만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고백하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참된 마음으로 하느님을 아버지라 고백함으로써, 우리 서로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알려 주며, 우리는 형제 자매가 됩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가족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가족 공동체 안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 공동체로 모아 주시면서 하느님의 자녀가 어떤 사람인지도 친절하게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이는 ‘용서’라는 가르침 안에서 분명해집니다.
구약 성경에 따르면 용서는 하느님만이 홀로 하실 수 있는 행위입니다. ‘용서’는 ‘창조하다’와 함께 하느님만의 능력을 나타내는 어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용서’라는 하느님의 고유한 권한을,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우리’에게 전해 주십니다. 엄청난 일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우리도 하느님의 고유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큰 선물을 받게 된 것입니다.
잠시, 내가 미워하고 싫어하며 우리에 속하지 않았으면 하는 그 사람(들)을 떠올려 봅시다. 떠올리기도 싫을 수 있습니다. 그냥 밉습니다. 그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기분이 안 좋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지 말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며 주신 특권, ‘용서’를 하느님 안에서 실천해 보면 어떨까요? 그럴 수 있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참된 자녀이며 도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